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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2 18:00 수정 : 2007.01.22 18:59

왜냐면

지난 17일치 〈한겨레〉에 신호승씨의 기고문이 실렸다. 글에서 신씨는 필자에게 “박종철을 두 번 죽이지 말라”고 했다. 또 ‘시장경제의 번영’과 ‘북한 민주화’가 박종철 정신이 아니라고 하였다.

신씨도 잘 아시다시피 박종철은 민주화 투사였다.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경제적으로는 ‘냉혹한’ 시장경제체제 대신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해야 할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주사(주체사상)-비주사 논쟁 속에서 북한에 대한 입장만은 분명하게 정했다. “박종철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북한 민주화가 아니라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패권주의적 팽창을 꾀하는 미국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신씨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북한 민주화를 2단계 과제로 생각했다.

신씨는 “박종철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바로 그 시장경제가 파괴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존엄이었다”고 했다. 당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라서 시장경제가 인간에 대한 존엄을 파괴하고 있다고 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1970년대 케인스주의의 파산에 이어 80년대 마르크스주의도 파산했다. 사회주의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20년 전의 박제화된 이론에 박종철 정신을 가두지 말고, 이 시대에 맞는 박종철 정신을 찾아내고 함께 키워나갔으면 한다.

오히려 시장경제는 자급자족 경제와는 달리 남에게 봉사해야만 유·무형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제다. 또 우리가 매일매일 돈으로 투표함으로써, 누가 소비자인 우리에게 더 봉사를 잘하는가, 또 더 만족스럽고 품질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누가 생산하는 것이 좋은가를 결정하는 자율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민주주의 체제다. 맛없는 음식점에 가지 않으면 결국엔 그 음식점이 문을 닫게 되듯이, 휴대폰을 우리가 사주기 때문에 이건희가 부자가 되듯이, 시장경제는 정성이 부족한 자는 외면하고 충성심이 투철한 자에게 보상을 내릴 뿐이다. 또 부를 창출함으로써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체제다. 이보다 더 ‘인간 존중적인’ 제도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나는 사회주의의 붕괴라는 세계사적 대격변을 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허위의식을 뿌리째 뽑아냈다. 종철이도 인간 존중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인간 존중이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정신이었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은 몽땅 내던져버리고 인간 존중 정신만을 지켜나가는 것이 살아남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87년 민주화 이후, 그리고 89~92년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주요 모순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구조적 독재체제는 사라졌다. ‘사회주의가 진보’라는 허위의식도 사라졌다. 매일매일의 민주주의가 중요하게 되었고 북한 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다.

20년 전의 박제화된 이론에 박종철 정신을 가두지 말고, 이 시대에 맞는 박종철 정신을 찾아내고 함께 키워나갔으면 한다.


박종운 /한나라당 부천오정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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