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1.25 17:33 수정 : 2007.01.25 17:33

왜냐면

1월16일치 <한겨레>에 실렸던 필자의 글 ‘투자자-국가간 분쟁제도에 대한 오해’에 대해 인터넷 언론 <대자보>의 황진태 기자는 19일치 같은 지면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오해는 없다’라는 반론을 실었다. 유감스럽게도 황 기자의 글은 제목과는 달리 투자자-국가 분쟁(이하 투자분쟁) 제도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주장을 많이 담고 있다.

황 기자는 투자분쟁에서 중재인들은 “국제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만든 규칙에 따라, 비밀리에 중재를 진행하여, 국내법을 휴짓조각으로 만들면서 다국적 기업의 승소를 유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자분쟁을 다루는 대표적인 국제기구인 국제투자분쟁 해결센터(ICSID, 이하 해결센터)의 규정이나 해결센터 중재판정부의 판정을 실제로 읽어 봤다면 이런 주장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해결센터 중재 절차나 중재판정부의 법률적 판단의 준거법은 해결센터 회원국의 합의로 작성된 협정문에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중재판정의 준거법은 당사자들이 합의하도록 되어 있으며,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당사국의 국내법과 관련 국제법을 준거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나 미국이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FTA)도 국제법을 중재판정 준거법의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중재판정부가 이런 규정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규칙을 만들어서 판정을 내리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만일 그런 판정이 내려진다면 그 판정은 당연히 무효화된다.

정부가 이미 밝힌 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투자 조항은 정부가 환경·건강·안전을 포함하여 정당한 정책목표를 위해 내외국인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규제조처를 시행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배상책임이 없다는 규정을 포함할 것이다

투자분쟁은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으며, 최근에는 상당 부분이 공개되고 있다. 해결센터는 모든 중재의 사건명과 당사국을 공개할 뿐만 아니라, 판정문 전문도 인터넷에 공개한다. 시민단체들도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에서의 투자분쟁은 당사자들이 제출하는 모든 의견서와 증거서류를 공개하며, 중재재판도 공개 진행한다. 중재판정부가 다국적 기업의 승소를 유도한다는 주장도 나프타에서의 투자분쟁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프타에서는 진행 중인 것을 포함해서 44건의 분쟁이 있었는데, 현재까지 판정이 난 13건 중 5건은 기업이, 나머지 8건은 정부가 이겼다.

황 기자의 주장 중에 가장 문제되는 것은 투자분쟁 제도가 공공정책과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전제다. 투자 조항을 포함하여 협상 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안 어디에도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사업이나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정부가 이미 밝힌 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투자 조항은 정부가 환경·건강·안전을 포함하여 정당한 정책목표를 위해 내외국인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규제조처를 시행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배상책임이 없다는 규정을 포함할 것이다. 이 규정은 그간 국제해결센터를 비롯한 투자분쟁에서 일관되게 받아들여진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다.

황 기자가 미국기업인 벡텔과 볼리비아 정부 사이 투자분쟁을 기업이익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사례로 예시한 것은 사실관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벡텔이 볼리비아 코차밤바시의 수도사업을 인수해서 물값을 올린 것은 투자 분쟁의 판정 결과에 따른 것이 아니라 볼리비아 정부와 맺은 애초 계약에 따른 것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국민의 반발을 이유로 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으며, 벡텔은 수도 사업권이 취소된 후에야 투자분쟁 소송을 제기했다가 아무런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취하했다. 코차밤바의 빈민들 대부분은 벡텔이 들어오기 전에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벡텔과 같은 다국적기업 또는 투자분쟁 제도가 수돗물 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황 기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코차밤바에서는 벡텔이 떠난 2000년 이후 상수도관이 하나도 새로 설치되지 않았고, 빈민들은 여전히 수돗물 공급을 받지 못해 부유층보다 10배 넘는 값을 치르고 급수트럭에서 물을 사 먹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최경림/외교통상부 FTA 제1교섭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