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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01 18:33 수정 : 2007.02.01 18:33

왜냐면

1975년 4월, 대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하여 도예종씨 등 8명에게 사형을 확정하였다. 그로부터 32년 만인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은 다시 재판을 열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몽둥이와 물·전기 고문 등으로 이루어진 허위자백과 당시 검찰, 중앙정보부, 경찰이 만든 조서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무죄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없다. 사형 확정 18시간 만에 독재정권은 사형을 집행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인정하고 바로잡았다는 데 의미가 있으나, 여전히 인간이 사법제도를 운영하고 형벌법규에 사형조항(89개항)이 곳곳에 남아 있는 한 누구도 제도적 살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 사형제 폐지를 다시 논의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누구도, 극악무도한 인간이라 해도, 설사 악마의 화신이라 해도 그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지요.” 작년 임해성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던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들의 대모 모니카 수녀가 한 말이다.

우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사형제도에 대하여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고, 적어도 우리 헌법이 형벌의 한 종류로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법원은 사형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마지막 형벌이므로 사형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사형선고의 허용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사법판단의 ‘무오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선진 사법을 자랑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사형이 확정되었다가 무죄로 밝혀져 석방된 자가 114명이나 된다고 한다.

대체로, 사형제도는 흉악범죄의 피해자와 그 가족 내지 사회의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고, 범죄의 일반적 예방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해 선택되고 있다. 그러나 알베르 카뮈는 사형제도가 사형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제도라고 하였다. 범죄 피해자의 고통과 분노를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피해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가해자를 겨냥한 한풀이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국가와 사회가 지원하는 것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씨한테 노모와 부인, 4대 독자까지 잃은 고정원씨는 사형선고를 받은 유씨를 용서하였다. 그리고 유씨는 “감히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저의 미래는 없지만 이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 뉘우치겠습니다”라고 용서를 빌었다.

사형선고에 대해 대법원이 제시하는 허용요건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사법판단의 ‘무오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피해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가해자를 겨냥한 한풀이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국가와 사회가 지원하는 것이다.

한편, 사형이 무기징역 등 다른 형벌보다 범죄 억지력이 더 크다는 과학적 증거도 없다. 사형제가 없는 유럽사회가 사형제를 존치한 미국보다 더 안정과 질서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나아가, 사형은 법관은 물론,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사형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제도다. 사도법관 김홍섭은 자신이 사형을 선고한 사형수에게 매주 구치소로 찾아가 “법이 있어 당신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당신에게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64명 가운데 38명은 한부모 가정, 고아, 부모이혼, 가난과 학대 등의 성장배경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평균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다. 그럼에도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이유가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건국 이래 사형당한 사람은 모두 998명, 이중 23명은 1997년 12월30일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되었고, 현재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64명이다. 국제엠네스티는 사형제가 존재하더라도 사형집행이 10년 이상 없으면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한다. 올해 말까지만 별일(?) 없으면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되어 그 정치적 의미는 있으나, 정권의 성향에 좌우되지 않으려면 법적 폐지가 중요하다.

유엔 192개 회원국 가운데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 미국 등 68개국뿐이다. 유인태 의원 등 여야 의원 175명이 발의한 사형제폐지특별법안이 국회 법사위원회에 상정되어 있으나, 여론에 밀려 본회의 통과를 못하고 있다. 프랑스는 사형제폐지법안에 국민 66%가 반대했지만, 의회는 ‘올바른 입법이 국민의 뜻’이라며 이를 통과시켰다. 유엔사무총장을 낸 우리나라가 이러한 국제적·시대적 흐름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멈추게 할 권리가 없다.

최종구 /경기도청 법무담당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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