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22 17:38
수정 : 2007.02.22 17:38
왜냐면
오는 2월25일은 필리핀 민중들이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피플파워’ 21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날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지금의 아로요 정부 아래서 언론인과 좌익운동가, 변호사, 노동운동가, 종교지도자, 학생, 인권운동가들이 수백명씩 무참히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인권단체 카라파탄의 집계에 따르면 2001년 아로요 정부가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정치살해로 숨진 사람이 832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300명 이상은 각종 사회단체의 지도자와 회원, 후원자들이었다. 24명의 인권운동가와 18명의 환경운동가, 8명의 변호사, 23명의 언론인, 수십명의 성직자와 종교인이 살해되었고, 60명의 여성과 43명의 어린이도 희생되었다. 무리한 군사작전으로 목숨을 잃은 농민만 200명이 넘으며, 납치되어 실종된 사람도 200명이 넘는다. 지금도 필리핀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아무런 법적 정당성 없이 살해되고 있다.
아로요 정부의 파괴적이고 착취적인 ‘개발 사업’과 반민중 정책에 반대하거나, 정부 내의 대규모 부패와 고위층의 무능, 선거 부정, 미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굴종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필리핀군에 의해 편의적으로 ‘공산주의자’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고 있으며, 군사당국의 사찰과 정치탄압을 받거나 정치살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러한 야만적인 정치살해의 배후에는 필리핀 정부와 군 관계자도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전역에서 아로요 정부의 파괴적이고 착취적인 ‘개발 사업’과 반민중 정책에 반대하거나, 정부 내의 대규모 부패와 고위층의 무능, 선거 부정, 미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굴종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필리핀군에 의해 편의적으로 ‘공산주의자’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고 있으며, 군사당국의 사찰과 정치탄압을 받거나 정치살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정치살해 문제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와 비판이 커지자 필리핀 정부는 지난해 8월에 멜로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정치살해에 관해 조사하여 진상을 밝히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지난 1월에 멜로위원회가 아로요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필리핀군에 의한 살해가 있었다고 지적했음에도, 아로요 정부는 문제의 군 관계자를 엄정하게 조사하거나 가해자를 처벌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필리핀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사법적 살해 문제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필립 올스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이 지난 12일 마닐라에 왔지만, 아로요 정부는 그에게도 멜로위원회 보고서를 보여주지 않았다. 열흘 동안의 조사활동을 마친 올스턴 판무관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상당한 수의 살해가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필리핀군은 이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고 말하며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은 수의 사람이 희생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수많은 시민사회 활동가를 위협하며 문제를 해결할 주요 수단인 정치대화의 여지를 손상시키는 등 여러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며, “정부와 군부의 사고방식이 변해야 하며,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들의 반란진압 전략을 재평가하지 않는 한 비사법적 살인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자 아로요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인 22일 기자들에게 멜로위원회의 보고서를 공개했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호비토 팔파란 장군 등 고위 군 관계자 여러 명이 정치살해에 깊이 관여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이제 멜로위원회의 보고서가 공개된 만큼 필리핀 정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각종 인권유린 사태를 당장 중단시키고, 필리핀 민중과 각계 지도자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정치살해와 폭력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완전히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인권유린 사건들을 철저히 조사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경찰과 군부도 자신이 관련된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책임지게 하고, 강제로 납치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마크 파드란/아시아태평양이주민선교회 한국 담당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