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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01 17:59 수정 : 2007.03.01 18:06

왜냐면

사형제 존폐논란의 두 시각

저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 폐지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인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의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는 고은태입니다. 조정래 선생께서 2월27일치 <한겨레>에 쓰신 칼럼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선 두 가지 사실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무조건 사형제 폐지?’라는 제목은 현재 사형제도 폐지운동의 주장을 왜곡함으로써 독자에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줍니다.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은 감형 없는 종신형 제도를 폐지의 대안으로 도입함으로써 흉악한 범죄자들이 일반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 대안에 찬성하지 않으실 수는 있지만, ‘무조건 사형제 폐지’는 사실과 다릅니다.

또한 국회가 민생법안은 제쳐놓고 사형폐지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쓰셨습니다. 이것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해 봄 관련 공청회를 연 이후 해당 법안은 글자 그대로 법제사법위원회에 처박혀 있으며, 국회 안에서 어떠한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5대와 16대 국회까지 따진다면 사형제 폐지는 거의 10년간 국회의 눈길을 받지 못한 채 별 진전 없이 폐기되는 불행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허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소설이라면 모를까 칼럼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혹 독자들이 관련 사실을 오해할 가능성이 있어 부득이 바로잡습니다.

흉악한 범죄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과연 사형제로 어떻게 가능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범죄는 교도소 안의 수형자들이 아닌 자유롭게 사회를 활보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집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을 목매다는 것보다, 범죄를 미리 예방하고 범죄가 저질러졌을 때 신속히 검거하여 추가 피해를 막는 것이 당연히 더 효과적입니다. 언급하신 흉악한 범죄자들이 수십억원을 모으기 전에 더 이상의 살인을 멈추도록 한 것은 사형집행장의 올가미가 아니라 이들을 검거한 경찰입니다. 더 빨리 검거했다면 피해자는 더 줄었겠지요.

‘사형제가 있어도 살인이 줄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사형폐지론 쪽의 인도적 감상주의가 아닙니다. 실제로 유엔과 권위있는 대학들에서 이러한 연구결과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적 결론에 대해 반증을 제시하기보다는 사형제가 범죄를 줄여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에 기대고 있는 사형찬성 쪽의 주장이야말로 단순하고 무책임하며 감정적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죽음에 또 다른 죽음을 더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는 믿음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유가족에 대한 고려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단순히 복수감정을 충족시키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가 유가족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더 나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사형제 유지 주장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결국은, 어떤 경우에 생명이 존엄하지 않은지, 어떤 인간의 생명을 말살할 수 있는지 예외조항을 정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형제가 없어져도 살인이 늘지 않는다는 보장을 무한책임으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당초 어떤 일에든 무한책임을 진다는 것이 인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사형을 유지하자는 분들은 그간 우리사회에 있었던 억울한 사형수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무한책임을 지고 계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또 앞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잘못된 사형이 나올 경우에는 선생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무한책임을 지실 것입니까?

우리는 흔히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변경할 때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꿀 수 있는 상황에서 바꾸지 않는다면 응당 이에 대한 책임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우리는 책임을 지고 선택해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형제 유지 주장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결국은, 어떤 경우에 생명이 존엄하지 않은지, 어떤 인간의 생명을 말살할 수 있는지 예외조항을 정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예외 없이 소중합니다. 사형폐지론자들은 단지 소수의 사형수들을 위해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생명이 예외 없이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우리도 어서 빨리 국가가 시민의 목숨을 합법적으로 빼앗지 않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고은태/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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