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필자는 사학재단의 전직 중등 교사이자 기독교 신자다. 지난 연말부터 다시금 사학법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너무나도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치민다. 국회에서는 민생법안이다 뭐다 하면서 의결 정족수를 채울 일만 있으면 수구·거대 야당은 판에 박은 듯 사학법 개정과 연계하여 볼모를 잡으려 한다. 천신만고 끝에 개정 사학법을 만들었던 집권당마저 ‘일부 문제 조항의 재개정 용의’ 운운하며 스스로 그들에게 꼬리를 내리려고 하는 작태가 참 민망스럽다. 지난해 성탄절 무렵에는 일부 목사님들까지 떨치고 일어나 “순교를 각오하며” 사학법 불복종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겠다면서 삭발을 감행하였다. 이제는 집권당에 있는 교회 장로라는 분들까지 마음이 기우는 듯하면서 국회에서는 목사님들에 뒤질세라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삭발투쟁을 감행한다. 이들에게 말하기 민망하지만, 필자는 하나님을 팔면서 세상을 현혹하는 거대한 착각을 본다. 이는 바로 신앙의 자유를 빙자하여 학교를 자기네의 사유물로 생각하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나팔수가 되고 있는 어리석은 몸부림과 다를 바 없다. 개방형 이사제는 대초 원안이었던 이사 정수비율이 3분의 1 이상에서 4분의 1로 축소된 것이다. 이사 총수가 7인일 경우 개방형 이사의 하한선은 3인에서 2인으로 줄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사학법 개정 무효화를 외치며 원외투쟁까지 마다지 않는 한나라당은 개방형 이사제가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해 왔다. 나아가 이 제도가 전교조의 사학교단 장악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에 발맞춰 범보수적 기독교 재단에서는 자기들이 세운 학교의 건학이념이 근본적으로 훼손됨과 동시에 학교 운영상의 자율성이 침해된다고 아우성이다. 한나라당 어느 의원의 계산으로, 개방형 이사 2인은 모두 전교조 후보가 독점하고 ‘말 잘하고 권모술수 잘 부리는’ 그들은 나머지 이사 중에서 한 사람씩은 포섭(?)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다면 전체 이사 일곱 가운데서 4인 이상의 과반수를 차지하여 결국은 학교가 ‘친북좌경 세력’인 전교조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사립학교 교원 중 전교조 교사는 10%가 채 안 되고, 대부분 학교에서 전교조 소속 학교운영위원은 교사위원 4∼5인 중에서 고작 1∼2인에 불과하다. 이 수로는 모두 십여 명이 넘는 학운위를 장악하여 개방형 이사를 추천하기조차도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교육부 당국자는 사학법 개정의 후속조처로 이미 학교법인 정관준칙을 슬며시 폐지하여 법인의 다수파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사를 마음대로 해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심지어는 시행령을 통하여 두 배수로 추천된 개방형 이사 후보는 ‘학교를 운영하는 종교재단의 종교인’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양보 조항까지 만들어 주었다. 왜 사학법인들은 유명무실한 개방형 이사제 도입조차도 그토록 전력을 다하여 반대하는 것일까? 국가의 공교육을 담당하는 공익기관이라면 개방형 이사만이라도 제대로 그 운영의 투명성을 지켜나갈 때 부패의 온상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그런데도 왜 그들 사학법인들은 유명무실한 개방형 이사제 도입조차도 그토록 전력을 다하여 반대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소수 친인척들이 이사회를 장악하여 장구 치고 북 치면서 학교를 말아먹던 수작을 더는 계속할 수 없게 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평준화 이후 학교를 다녔던 청장년층의 절반 이상은 바로 사립학교의 졸업생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학교에 다닐 때 재단이사장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만을 부리며 교사들 위에 군림했던지, 공립학교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낙후된 학교들이 음성적으로 각종 찬조금을 얼마나 심하게 강요했던가 하는 비리의 생생한 증인이 되어주고 있다. 이번 사학법 개정문제에서 사학재단 관련자들이 예외 없이 강조한 것이 “왜 우리 모두를 범죄자로 보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내놓았다는 대안이 ‘비리사학에 한하여’ 하는 단서조항인데, 한국에서 사학 경영자 중 상당수는 이익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비리가 들통이 나서 신문·방송에 폭로된 학교는 그나마 상처가 터져서 병원에 실려 간 꼴이고, 그렇지 않은 ‘조용한 사립학교’ 중에서도 골병이 든 중병환자나 다름없는 곳이 적지 않다. 그래도 전자는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이들이 내부에 존재한다고 보나, 후자는 그마저도 없는 무기력한 사학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떳떳하지 못한 자들이 국가 지원금을 유용하고 학생 등록금을 개인의 주머니로 빼돌리던 작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사회의 과반수를 장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 한 사람 원칙을 지키는 외부인사가 개방형 이사로 들어가 그들의 협잡의 장을 지켜본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켕기는 구석이 한둘 아닐 것이다. 사학법인이 비리의 복마전이 아닌, 국가의 공교육을 담당하는 공익기관이라면 한 사람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들 개방형 이사만이라도 제대로 그 운영의 투명성을 지켜나갈 때 조금씩이나마 이 나라 사학은 부패의 온상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이윤/전 홍익대부속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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