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05 17:55
수정 : 2007.03.05 17:55
왜냐면
하남시가 화장장 갈등의 해법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절차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민투표 방식도 잘못 운영하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05년 11월의 경주시 방폐장 터 선정은 성공했지만 2001년 5월의 울산시 북구와 2005년 9월의 전북 정읍시 화장장 터 선정은 실패한 경험을 보더라도 주민투표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경주시 방식과 하남시 방식 모두 비선호시설의 불이익을 상쇄하는 지역개발 사업으로 사회적 형평성을 확보하고 주민들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경주시 방식은 4개 시·군의 유치경쟁 방식이었기 때문에 방폐장의 안전성이나 주민투표의 공정성보다 경주시와 군산시 간의 경쟁 구도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 반면에 하남시는 화장장을 유치하겠다고 신청한 지역이 없는 상태에서 단일지역의 주민투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시에서는 화장장이 들어설 지역과 진입로 주변 주민들이 반대하더라도 그 밖의 지역 주민들 수가 더 많고, 이들은 지하철 5호선 연장 등의 개발혜택 때문에 다수가 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최소한 주민투표법이 정한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 투표와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을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강요당한다고 느낄 때, 혜택은 도시 사람들이 누리고 고통은 농촌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주민들의 건강과 재산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었던 행정기관이 주민들을 속이고 이용한다고 느낄 때 갈등은 더욱더 심화된다.
하지만 시의 생각대로 주민투표가 화장장 갈등을 해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지 의문이다. 3분의 1 이상 투표와 과반수 찬성은 전체 유권자의 17%에 불과한데, 반대하는 주민들이 이것을 공정한 민주절차로 인정하고 결과에 승복할까? 이러한 우려 때문에 방폐장 주민투표도 복수지역의 경쟁 방식으로 투표율과 찬성률을 높였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울산시 북구나 전북 정읍시처럼 화장장 예정지역 주민들의 동의 여부를 묻는 투표가 아니라 하남시 전체 시민들의 의사를 묻는 투표방식의 공정성 문제도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화장장 반대 주민들이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이유도 이런 불공정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남시도 물론 이런 문제점들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폐장 주민투표처럼 공정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투표에서 이기기만 하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체 면적의 90% 가까운 그린벨트에 광역 화장장을 유치하는 대가로 하남시 발전의 주춧돌을 놓으려는 시장의 생각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경기도와 서울시로부터 파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조바심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혹시 임기 중에 완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강요당한다고 느낄 때, 혜택은 도시 사람들이 누리고 고통은 농촌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주민들의 건강과 재산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었던 행정기관이 주민들을 속이고 이용한다고 느낄 때 갈등은 더욱더 심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 의견을 강요하는 주민투표는 소수 의견의 극단적인 저항을 유발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주민투표 부결이란 시행착오를 겪은 울산시와 정읍시 모두 기존의 공동묘지를 중심으로 화장장 터를 공모하고 주민들을 협상의 상대방으로 인정하며 인내와 끈기의 리더십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남시도 경기도가 주도하는 공모와 협상 방식으로 단일지역 주민투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 화장장 갈등을 해결하는 바람직한 해법이다.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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