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물 한 그릇만 있으면 살 수가 있는데도, 큰 강물을 끌어다만 살려주겠다고 하십니까?”수레바퀴 자국에서 죽어가고 있던 붕어가 한 말이다. <장자>라는 책에 나온다. 한 그릇 물과 같은 약간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수레바퀴 자국의 붕어 신세가 된 저소득 근로자, 영세 사업자들이 강물이 들어오는 호시절을 기다리지 못해 속병이 들고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등진다. “사람을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를 잘못해서 죽이는 것이 다름이 있습니까?”라는 ‘맹자’의 질문에 ‘혜왕’은 “다름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도 내 탓이라며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 하나 없다. 돈은 혈액과도 같다. 피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특정 부위에 뭉치면 병이 든다. 그런데 우리 경제의 모습은 돈이 모세혈관 같은 서민들에게 잘 흘러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활한 순환을 하지 않는 병증을 보이고 있다.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보시라. 소액 신용대출에 누가 나서야 하는가? 첫째,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새마을금고를 포함한 협동조합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둘째, 제1금융권과 여타의 금융조직들도 동참해야 한다. 셋째, 정부가 거들고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하며, 정치권과 언론·학계 쪽이 함께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답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바로 소액 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에 있다. 유엔이 2005년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로 선포했어도 우리 정부·정계·언론·학자들은 외면하다가, 방글라데시의 유누스와 그라민은행이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을 벌여 빈곤 퇴치에 앞장선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으니까, 뒤늦게 서울평화상까지 주었다. 그럼 소액 신용대출에 누가 나서야 하는가? 첫째,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새마을금고를 포함한 협동조합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지금 이 단체들은 자금이 남아돌아 운용에 애를 먹고 있다. 오죽하면 프로야구팀을 인수하겠다는 발상까지 했겠는가. 단위조합들은 돈을 떼일까봐 서민 대출을 꺼리고, 중앙회에는 이자가 적어 예탁하지 않고, 고액의 우량 대출은 더욱 어려운데다 펀드 또한 위험하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둘째, 제1금융권과 여타의 금융조직들도 동참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협동조합에서 힘겹게 소액 신용대출을 해줘봐야 결국 상대적으로 이자가 낮은 거대 제1금융권으로 흡수되고 말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과 가계소득이 늘어났는데도 살기가 더욱 어렵다는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셋째, 정부가 거들고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하며, 정치권과 언론·학계 쪽이 함께 나서야 한다.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이 주류를 이루는 영세 사업자들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세혈관 같은 영세 사업자와 서민들이 병들고 나자빠지면 대동맥 같은 대기업과 부유층이라 해서 온전할 수 있겠는가. 혈액 같은 돈이 돌아야 소비가 늘고, 고용과 소득이 늘어 민생이 살아난다. 몇 곱의 이자를 더 물어야 하는 채무 연체자나 개인 회생·파산 신청자가 줄어들며, 금융권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때문에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금융권에서 인간의 등급을 매기며, 선진 금융시스템이라고 자랑(?)하는 개인신용평가 시스템(CSS) 제도를 들이대면서, 가슴 치는 서민들을 살인적인 고이율 사채시장으로 내몰 필요가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저소득 근로자와 영세 사업자들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고루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라민은행의 소액 신용대출 회수율은 99%에 이른다고 한다. 무조건 대출만 해주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카드대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철저한 분석과 지도가 필요하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모두 함께 살 길은 마이크로 크레디트에 있다.임영모/서예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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