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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1 19:01 수정 : 2005.03.21 19:01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교무부장이 방송으로 공고까지 하면서 수업의 10분을 할애하여 실시한 설문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학교폭력의 실태를 접해왔다. 왕따 정도로 심하진 않지만 실제로 당해본 적도 있다.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 직접 당한 적은 없지만, 실태와 비슷한 사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설문지에 모든 것을 담아낼 작정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문지를 받아든 순간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설문지는 ‘올해에 일어난 사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학한 지 고작 3주 정도 되었는데, 그 정도의 짧은 기간만을 범위로 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대충 실시한 겉치레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여태까지의 학교행정에서 이 정도는 ‘감지덕지’라는 생각으로 설문지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했다. 질문은 객관식으로서, 주요 질문사항은 폭행, 금품갈취, 집단따돌림, 불량서클의 존재여부 등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사건은 실망의 수준을 넘어 정말 충격적이었다. 담당교사가 학생들이 작성한 설문지를 맨 뒷사람이 걷어오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앉고 싶은 대로 자리배치를 한 까닭에, 소위 ‘가해자’급 학생들은 모두 뒤에 앉아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학생들은 설문지를 걷어오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성한 설문지를 꼼꼼히 체크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교사는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딴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무기명 설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나도 답변을 ‘없다’ 또는 ‘모른다’로 모두 고치고 말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다른 반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다. 소위 ‘일진회’라 불리는 학교폭력 문제가 경찰이 나서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 것이 교원들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예산삭감’을 이유로 교원이 자진신고를 저지한다는 내용의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보았다.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교원들과, 일당백으로 구성된 선도부 아래에서, 누굴 믿고 불안한 학교생활을 계속해야할 지 암담하기만 할 따름이다. 강대한(가명)/울산광역시 남구 야음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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