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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9 18:42 수정 : 2007.03.29 18:42

왜냐면

지금만큼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지난날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힘으로 가능했다면, 한국 사회의 인권·복지·투명성을 실현하는 데 이십여 년 시민운동의 힘이 컸다는 건 부인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3월22일치 〈한겨레〉 기획연재 ‘시민운동 어디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민운동가들은 시민운동이 위기라는 데 절반 정도가 동의하면서도 그 첫째 이유로는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46%)를 꼽았다. 이건 정말 아니다. 위기의 원인을 ‘주체’에서 찾지 않고 ‘객관’에서 찾다니? 위기의 진짜 원인은 내부와 주체에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작금 시민운동 위기의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과 함께하려는 치열함과 진정성의 부족’ ‘활동가들의 패기와 능동성의 후퇴’ 아닐까? 모두들 좋은 뜻을 가지고 모였지만, 최근 시민운동이 민중·서민으로서 고통받는 시민들과 얼마나 함께했는지,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부동산·집 문제로 망연자실해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시민운동은 풀지 못했고, 시민사회가 전면적으로 대응한 적도 없다. 수백만명의 자영업자들이 호소하는 신용카드사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에 적극적인 시민단체를 보지 못했다. 또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중교통, 각종 공공서비스, 정보·통신, 생활현장의 문제 등등에 누가 천착하고 있는가.

시민들은 후원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하기를 바라고, 중요한 결정은 이른바 교수·변호사·활동가·고액 후원자 등 ‘전문 집단’의 고유영역이 돼 버리지 않았나?

감히 묻겠다. 그 많은 시민들의 억울한 이야기, 하소연, 고충 호소에 귀 기울이고 낮은 자세로 함께한 적이 있는가. 정부나 지자체의 고충민원 또는 국민제안 사이트에는 1년에도 수만 건의 글이 올라가고 있는데, 시민단체들은 시민상담을 활성화하거나 제안이나 고충민원을 낼 수 있는 장치나 해결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는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성찰해야 한다. 운동을 위해서겠지만, 주로 기자·언론인, 정·관계 인사들, 교수·변호사 등 전문가들, (고액의) 후원자들, 동료 활동가 등일 텐데, 그 와중에 시민운동가와 평범한 이웃들과의 정서적 거리 역시 멀어지고 있지 않았던가.

시민운동의 위기는 이처럼 ‘시민들과 너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에서 비롯한 것으로 봐야 한다. 시민운동에 시민들이 얼마나 있는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정관에 무슨 규정이 있고, 운영비의 상당부분을 시민들이 후원하고 있고 …,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진짜 평범한 시민들이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주요 시민사회단체의 의사결정과정, 문화, 소통 방식은 어떠한가? 시민들은 후원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하기를 바라고, 중요한 결정은 이른바 교수·변호사·활동가·고액 후원자 등 ‘전문 집단’의 고유영역이 돼 버리지 않았나?

예전에도 그러했는데, 그것이 위기의 원인이 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잘나갈 때’는 객관의 호조 속에서 이 중대한 ‘주체’의 문제가 가려져 있었다가 객관의 변화 속에서 문제와 위기의 본질이 제대로 드러난 것이다. 위기 타개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모두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열정으로 ‘시민의 바다’로 풍덩 빠져들자.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안진걸 /시민사회단체 청년활동가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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