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3.29 18:43 수정 : 2007.03.29 19:37

왜냐면

세계화·개방화 시대에 선진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다만 그것은 우리의 현실과 발전전략을 고려한 전략적이고 선택적인 것이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러한 ‘전략적 개방정책’의 하나로 추진되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 국민의 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중대한 사안이므로 반드시 국민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충분한 설득과 공감대도 없이 협상을 시작했다. 또한 처음부터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협정으로, 미국의 시한에 맞추어 추진할 것임을 밝힘으로써 개방전략과 협상전술 양면에서 크나큰 오류를 범했다.

정부의 더 큰 과오는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정부는 협상 개시 이후에도 민주적 의견 수렴은커녕 ‘국익’과 ‘민생’을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모조리 ‘개방’을 반대하는 ‘쇄국론’으로 매도하였다. ‘졸속’ 추진에 대한 반대와 ‘개방’에 대한 반대는 엄연히 다른데도 말이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집회와 방송광고를 금지하는 등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마저 억압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많은 국민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정부는 이번 고위급 회담을 통해 협상을 타결하려는 것 같다. 왜 우리가 미국이 정한 시한에 쫓겨 협상을 타결해야 하는가? 미국 의회 지도자도 3월30일 협상시한에 대해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리와 동시에 대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한 말레이시아는 ‘필요에 따른 개방원칙’을 내세우며 협상을 무기한 중단했다.

정부의 더 큰 과오는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협상 개시 이후에도 민주적 의견 수렴은커녕 국익과 민생을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개방을 반대하는 ‘쇄국론’으로 매도하였다. 잘해도 손해이고 못하면 더 큰 손해로 끝날 것이 분명한 이 협정이 체결된다면 서민과 중산층은 큰 고통을 받게 되고, 국민적 갈등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협상 상황을 보면 더욱 참담하다.

거의 합의된 ‘투자자-국가 중재 제도’는 미국의 투자자는 물론이고 투기꾼에게까지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국권을 내줄 위험이 있다. 우리 정부의 공공정책권이 심각하게 제약당해 양극화 해소나 복지 정책 등도 뜻대로 추진할 수 없게 된다. 반덤핑제도를 동원한 미국의 부당한 무역장벽을 협상시한에 맞춰 없애려면 미국 무역대표부가 지난해 말까지 무역구제 관련법 개정을 미국 의회에 보고했어야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통상독재를 상징하는 존스법-미국 연안의 승객과 화물 운송은 미국 국적 선박과 미국제 선박으로 제한-을 고치는 것을 우리 협상단이 포기한 지 오래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은 관세철폐마저 유보하겠다는 주장이고 우리에게는 세제를 비롯해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미국에 유리하게 고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엄청나게 유리하다던 섬유마저 기대 이하다. 한마디로 얻은 것은 없고 내주기만 하는 ‘일방적 퍼주기’로 끝날 우려가 높다.

정부는 쌀만 지키면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데 이것도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쌀시장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이미 단계별 개방 일정과 국가별 수입할당(쿼터)까지 정해져 있어 미국과의 사이에는 더 지키고 말고 할 것이 없다. 수입액에서 쌀의 40배에 이르는 쇠고기를 양보하면 유럽이 안전을 이유로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미국 쇠고기에 우리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노출될 것이다. 신약을 중심으로 한 약값 인상도 우리 국민에게는 또 하나의 위협이다.

투자자-국가 중재 제도의 초안은 미국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우리 협상단이 미국에 먼저 제시하였다. 우리 목을 겨눌 창을 우리 손으로 상대방에게 쥐여준 꼴이다. 이처럼 무능력한 협상단이 과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협상의 물길을 근본적으로 돌릴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밝혀진 협상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잘해도 손해이고 못하면 더 큰 손해’로 끝날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이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면 아무런 실익도 없이 서민과 중산층은 큰 고통을 받게 되고, 국민적 갈등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결과를 따져본 뒤, 더 철저한 준비와 국민적 공감대를 거쳐 차기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만이 국익과 민생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다.

천정배 / 국회의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