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02 17:36
수정 : 2007.04.02 17:36
왜냐면
지난 2월28일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총련 동포들이 국회를 방문하여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인권유린, 특히 민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인권유린 실태를 발표했다.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도쿄 조선중고급학교의 한현주 학생은 학생들의 어려움을 얘기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치마저고리를 지켜 나가겠다”고 하여 가슴을 찡하게 했다.
재일동포 대부분은 과거 식민지 역사 속에서 강제징용 등으로 일본에 끌려가 다시 조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정착하게 된 경우다. 그들은 멀리 이역에서도 우리 민족의 얼과 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학교를 만들고 지금껏 지켜 왔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교육을 재일조선인 운동의 생명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민족교육이 걸어온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지금도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하기는커녕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탄압을 한층 교묘하고 야비하게 지속하고 있다. 작년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총련 동포들에 대한 탄압이 거세져 민족학교 주변 곳곳에 ‘학교를 폭파시키겠다’는 문서들을 붙이고, 등교하는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찢고, 심지어는 손가락을 잘라 편지봉투에 담아 보내는 등 있을 수 없는 인권유린들이 벌어졌다.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는 매년 5천만엔(5억원)이나 되는 임대료를 몇 해째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인과 세금은 똑같이 내면서 정부 지원은 전혀 없어…그들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라, 제도화된 차별의 개선이다.
필자는 재일동포 인권탄압 중지와 민족학교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3월26일부터 28일까지 일본을 방문하여 국회의원들과 면담하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민족학교를 방문했다. 학생들은 너무 맑고 티 없는 얼굴이었다.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는 도쿄에 있는 유일한 중고급학교로, 벌써 2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가 60년이 되는 동포들의 자랑이자 ‘민족교육의 맏아들’로 불리는 학교다. 봄방학 중에도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각자의 소조활동에 열심이었다. 학교 곳곳에 ‘우리말을 지키자’, ‘민족학교는 우리의 얼이다’ 같은 글들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학교의 현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는 매년 5천만엔(5억원)이나 되는 임대료를 몇 해째 내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동포들은 일본인과 세금은 똑같이 내면서 정부 지원은 전혀 없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일본 학교의 10분의 1 수준이다. 현재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 모두가 ‘북조선’ 국적을 갖고 있는 총련계가 아니다. 그곳에는 북, 남, 제3국적 등 다양한 동포들이 우리 말글을 지키면서 교육받고 있고, 어머니들은 낮에는 직장으로 밤에는 다시 모여 김치를 만들어 팔아서 그 돈으로 학교를 지키고 있다. 그들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라, 제도화된 차별의 개선이다.
2·13 합의 이후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예상된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수교 논의까지 오가고 있으며,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뀔 희망도 점쳐진다. 그러나 아직 일본에선 평양 방문보다 오히려 총련 방문이 더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일본이라는 이국 땅에서 또다른 분단의 모습을 보았다. 정보기관들은 총련과 민족학교를 방문하는 우리의 행동을 주시했다.
이제 북과 남, 재외동포 모두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준비할 시기다. 일본 땅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는 우리 아이들과 학교를 지키는 것은 어떠한 정치적 이해도 없이 민족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국외에서 한 세기 동안 고생했던 우리 동포들은 땀과 눈물로 우리의 글과 말, 그리고 민족의 얼을 지켜 왔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껴안을 차례다. 그 첫걸음이 바로 민족학교를 지켜 내는 것이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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