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12 21:48
수정 : 2007.04.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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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취업박람회를 찾은 한 노인이 부스를 찾아 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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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채용 몇달 지나도 계약서 한장 안 써
요즘 언론에서는 거의 날마다 노인문제와 고령화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대책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직업현장에서 일하는 노인에 대한 편견과 불이익에 대한 대책은 부족한 것 같다. 필자는 교직을 마친 뒤 “해온 일과 비교하면 모멸감 때문에도 힘들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경비직에 취업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각오하고 덤벼든 일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주민들과도 얼굴을 익히고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오히려 경비직 노인들 스스로 사회 밑바닥 일밖에 할 수 없다는 자괴감으로 자신을 폄하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몇가지 문제점을 들어보자. 아파트나 기타 회사 경비직의 대부분은 용역회사와의 계약으로 취업이 된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용역회사 임직원의 얼굴도 볼 수 없으며, 계약 조건이나 근로 환경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일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용역회사의 불성실한 태도다. 경비직 노인들도 어쩌다 얻은 일자리마저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자세히 묻지도 못한 채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약자로서의 체념’이 팽배해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인간으로서 안타까울 정도의 복종 심리가 몸에 배어, 돌아서서는 불만을 터뜨릴지언정 경비직 서로간에도 믿음과 관용의 여유가 없다.
용역회사에서 우리가 돈을 받을 때 급여 총액에서 공식적으로 20% 정도가 공제된다. 경비복 보급도 거의 없어 선임자가 두고 간 몸에도 맞지 않는 옷 한 벌로 견뎌야 하며, 옷이 더러워져도 세탁해서 입을 여유조차 없다.
급여 공제액도 이해할 수 없다. 용역회사의 영업비나 피복비(실제로 옷 한 벌 주지 않지만), 기타 잡비 등 많이 있겠으나, 20% 정도의 공제액에 더해 10% 정도의 적립금을 더 공제한다. 실제 수령액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부담하는 금액의 7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더군다나 적립금은 1년 이상 근무해야만 지급된다고 한다. 관행이며 규약이란다. 1년을 채우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의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첫째, 관리사무실과 입주자 대표들은 경비직 노인들을 용역회사에만 맡겨두지 말자. 둘째, 경비직 노인들도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직업의식을 갖자. 셋째,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자.
경비 근무 4개월 만에 뒤늦게 계약서를 쓰기 위해 용역회사 직원을 처음 만났다. 그런데 자세한 내용을 묻기도 전에 바쁘다며 가버리니 답답하다. 경비 업무는 24시간 맞교대 근무로, 하루는 완전히 날밤을 새야 한다. 밤늦게 동료들이 번갈아 순찰할 때 의자에 앉아 잠깐씩 눈을 붙여 보지만 그것이 쉬는 것이겠는가? 노인 건강을 강조하지만 경비직은 건강 소외 지역이다. 더 많은 임금을 달라는 것도 아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사정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용역회사의 터무니없는 공제는 우리를 비참하게 한다.
취업 노인들에 대한 통계도 미비하다. 대략이라도 노인이 관내에 몇 사람이나 되며, 취업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직종과 보수, 생활 정도 등을 알아보려 해도 알 길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노인 문제와 그 대책이 어떤 근거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암울한 일제 식민통치와 급격한 산업화를 거쳐 오면서, 노인 세대가 폭발적인 지식의 양을 수용하지 못하고 문화변동의 충격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 또한 자기 책임이라며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는가?
문제 해결을 위하여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관리사무실과 입주자 대표들은 경비직 노인들을 용역회사에만 맡겨두지 말자. 매달 용역회사에서는 적립금까지 합해 30만원이 넘는 근로의 대가를 가져가면서도 경비직들에게는 어떠한 관심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노인 건강과 복지에 관한 한 사각지대다. 그래서 관리사무실이나 입주자들이 월 2만원 정도의 노인보험을 가입시켜 준다면 매달 약 30%의 급료 공제가 없어져도 경비직 노인들이 실질적 혜택과 소득보전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망뿐 아니라 골절 등 작은 부상과 질병 치료에도 보상을 받을 수 있어 환영받는 일이 될 것이다.
둘째, 경비직 노인들도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직업의식을 갖자. 자식들에게 얹혀살지 않는 건강한 정신과 노동력을 갖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입주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입주민들도 경비직에 대한 편견이나 잘못된 인식이 있다면 바로잡게 하자. 서로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입주민들은 노인들이 아무래도 일이 서툴고 굼뜨게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려니 하는 이해와 아량으로 협조하고, 노인들에게는 그 나름대로 오랜 경험에서 오는 생활의 지혜가 있다는 것도 인식하자는 것이다.
셋째,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자. 노인들은 자기 노후 대책을 미리 세우지 못한 것을 자탄하지 말자. 지금까지 노인들은 많은 부양가족 속에서 끊임없이 일해야만 살 수 있었다. 젊은 세대도, 노인이 순발력이 떨어지고 번뜩이는 예리함도 부족하지만 살아온 숱한 날들에서 비롯한 풍부한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최양 /경기 평택시 비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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