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전원장무호불귀’(田園將蕪胡不歸) 도연명의 귀거래사 첫 구절이다.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라는 뜻이다. 이 시를 끝까지 읽으면 도연명이 황폐한 자연에 대해 책임 있는 행위나 과제를 실행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영향을 받은 노장 사상 탓인지도 모르겠다. 무위의 삶을 살았다. 아니 인간의 근본으로 돌아간 자연을 닮은 삶을 살았다.이 도연명의 글과 삶을 읽으면서 황폐해지는 오늘의 인간과 사회를 바라본다. 그리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삶이 이 시대에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필자는 귀농 12년 동안 황폐한 인간과 사회 속에서 근본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그 답을 따라 실행하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근본을 따르기 위해, 황폐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귀농운동을 펼치고 있다. 나 역시 유기농업과 대안교육 및 대안 공동체 운동을 펼치는 동지들과 함께했다.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호소는 경제동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 문명의 토대가 썩지 않으려면 기업도시 대신 생태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격월간 〈녹색평론〉도 황폐한 삶을 되돌리기 위한 철학과 지식, 지혜와 기술을 끊임없이 소개하여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 호소에 머물지 않고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단식 등 수많은 행동과 실천을 했다. 녹색연합과 환경운동 연합도 같은 흐름으로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환경부나 농림부, 그리고 행정자치부도 인간과 사회와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자연의 근본을 되살리려는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역균형발전’ ‘혁신도시’ ‘행정복합도시’ 따위의 그럴듯한 정책을 들고 나와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겠다고 한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러한 정부의 정책이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인간의 근본을 경제적 동물로 바라보는 시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피폐해지는 농촌을 위한 미봉책으로 거대한 예산을 책정하고 기업도시를 조성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자연을 황폐하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연이 황폐해진다는 말은 인간과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문화와 문명의 토대가 썩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도연명은 녹봉을 얻기 위해 인간의 근본(자존심)을 버릴 수 없었고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호소를 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동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 시대 우리나라가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떤 것일까? 세계인에게 감동과 깨달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한류’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인간이, 사회가, 국가가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생태국가’ ‘생태도시’ ‘생태마을’ ‘생태공동체’라는 길이다. 앞으로 닥칠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나라의 근본을 바로세우려는 국회의원들이 생태도시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생태적 산업(건축, 농업, 음식 등), 문화, 교육, 적정기술을 포함하는 생태적 도시설계를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도 국민과 사회, 나라의 근본을 먼저 생각해 주기 바란다. 정치권력을 다듬기 위해 사람들에게 권력에 기생하게 하고 기회만을 엿보게 하는 타락한 인간으로 길들이려는 노릇을 중단해 주기 바란다. 인간을 경제동물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회를 기계적 틀에서 생명의 틀로 바꾸고, 나라를 거대 자본세력 노예에서 해방시키는 정치인이기를 바란다. 생태문화도시에 대한 꿈과 그 실현은 이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유일한 희망이다.
허병섭 /녹색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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