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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9 18:44 수정 : 2007.04.19 18:45

왜냐면

지난주 건설회관에서는 건설교통부가 주최한 ‘댐건설 장기계획 변경(안)’ 설명회가 있었다. ‘댐건설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댐 계획을 5년마다 수립 혹은 변경토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설명회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정부 계획에 대한 발표’가 그곳에는 없었다. 댐이 ‘어느 지역’에 ‘왜 필요’하고, 이를 위해 ‘언제까지’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인지는 빠진 채, ‘주민들의 의견’만 듣겠다는 황당한 행사였다. 발표자들의 발언을 들어봐도, 주요 계획 자체가 수립되지 않았다는 것인지, 수립했는데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정부 보고서라며 내놓은 ‘댐건설 장기종합계획 변경(안)’은 이미 지난해 발표된 ‘수자원 장기종합계획’의 주요 내용을 따 온 50쪽도 안 되는 부실 자료였다. 새로 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은 채, ‘댐 주변 주민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나 ‘건교부가 댐 계획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자체 추진하겠다는 것이 새로운 내용의 전부였다.

건교부에서 수립한 댐 계획이라 농림부(농업용), 환경부(식수용), 산업자원부(발전용) 관할의 댐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검토도 없었다. 때문에 이번 계획은 전국의 1만8000여개 댐 중 수자원공사가 운영, 건설, 계획 중인 20여개 댐에 대해서만 거론하고 있다. 전체 댐의 0.01%에 해당하는 계획인 셈이다. 또한 말 그대로 댐을 ‘건설’하기 위한 계획이라, 수명을 다한 댐의 철거나 위험한 시설들을 보수하는 내용도 없다. 물론 댐 하층에 퇴적된 토사를 처리하거나, 오염된 수질을 개선하고, 안동과 춘천 주민들을 괴롭히는 흙탕물 처리 방안도 없다.

언제까지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대한 발표는 없고 주민들의 의견만 듣겠다니 황당 반대 강도를 측정하겠다는 심산인가 논리성 결여된 밀어붙이기보다 물관리 법제도부터 정비하라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댐 계획 보고서에는 없는 내용들을 해당 지역에는 흘렸던 모양이다. 예를 들어, 충북 언론에는 괴산군에 길이 21, 높이 36m의 달천댐이 들어서고 괴산읍과 불정·감물·장연면 660만평(21.8㎢)이 수몰될 예정이라고까지 보도가 됐다. 따라서 주민들은 9년 전에 이어 또 다시 갑작스럽게 댐건설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 설명회에도 찬성, 반대하는 주민들은 버스를 동원해 각각 참여했고, 설명회 중간에 여러차례 고성을 주고받았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농촌에서 댐이라도 들어서 수몰지가 되면 그나마 보상이라도 받고 떠날 수 있는 주민들과 댐 때문에 새로운 피해까지 감당해야 하는 주민들의 당연한 갈등이었다.

결국 이번 설명회는 법이 정한 계획을 세우기 위한 구색이었으며, 모호하게 정보를 흘려서 주민들의 반응을 떠보는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댐 건설계획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라, 주민들의 반대 강도를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설명회에 참여했던 주민들은 의미 없는 행사에 동원된 바보가 됐으며, 참석하지 못한 지역 주민들은 댐건설 반대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돼 새로운 댐 계획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국가가 나서 대규모 물 관리시설을 건설하던 시대에 필요했던 법률과 제도를 아직 정비하지 못한 탓이다. 댐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는 정부 조직이 각종 보상금으로 지역 주민들을 무마하는 법률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몰지역 주민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과실수를 한 뼘마다 심으며 양심을 속이는 일이나, 외지의 전문 투기꾼들이 지역공동체를 농락하는 현실은 퇴행적인 법률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이번 설명회는 기형적인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과, ‘건교부 수자원국’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적절히 보여준 사례였다. 5년 후 또 다시 이런 당황스런 자리를 만나지 않기 위해 법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국토생태본부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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