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온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타결이 가져올 파장에 두고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국민소득, 무역, 생산, 고용 등 국민경제와 각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나름대로 추정 손익계산서를 발표하며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국회 비준과 각종 제도 개편 등 후속절차와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에 대한 지원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하지만 각계의 토론을 살펴봐도 서비스 산업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특히 전력, 가스 등 에너지 산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유보 대상에 포함됨으로써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 정부조달 협상에서 공기업과 지방정부의 조달시장은 개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투자 및 서비스 분야 협상에서도 정부조달은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렇게 에너지 공기업은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제약을 몇 겹으로 비껴가고 있다. 더욱이 원자력 분야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에서 쌍방 유보되었고, 북미 자유무역협정에서도 유보 대상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개방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았고 협상 과정에서 논란이 된 적도 없었다.
한-미 FTA는 비껴갔지만 개방압력을 막을 순 없다. WTO 정부조달협상에서 한전은 양허 대상에 올라있다. 자기혁신을 시급한 이유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이 여기에 안도하거나 축배를 든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비하는 현명한 일이 못 된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개방화의 흐름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간 다자간, 양자간 무역협상에서 우리 에너지 산업의 개방이 유보된 것은 협상의 산물이며, 버티기의 결과다. 언제까지 우리의 시장방어적 에너지 산업 전략이 국제사회에서 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전기, 가스 등 에너지 서비스의 공공성을 주장한다.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다. 전기나 가스의 사용 대가를 우리는 요금이라고 한다. 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과 달리 정부 통제 아래 공급원가를 적절히 배분하는 형태의 요금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은 국내 사정이고 우리의 형편일 뿐이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일찌감치 에너지 산업이 민영 체제에 기반을 두고 성장해 왔고, 에너지 설비와 유통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이들은 에너지 산업의 공공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 협상’에서 유럽 선진국들이 전력을 포함하여 모든 에너지 시설의 건설과 운영, 에너지 유통 등 에너지 서비스의 개방 확대와 투자제한 철폐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 협상’에서 한국전력공사는 양허대상 기관에 올라 있다. 다만, 개방내용에 관한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사실상 문이 닫혀 있을 뿐이다. 이는 한전의 자회사에도 적용된다. 지금 ‘정부조달 협상’의 양허협상은 진행 중이다. 향후 타결 방향에 따라 전력산업을 비롯한 우리 에너지 공기업의 조달시장은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에너지 산업의 운영 전반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앞으로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경우, 우리 에너지 산업에 대한 개방 요구는 훨씬 더 거세질 게 분명하다.
개방화라는 시대적 대세는 이미 돌이킬 수 없고, 무역협상은 산 넘어 산이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를 헤쳐갈 방법을 찾고, 한발이라도 앞서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에너지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만이 시장 개방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대책이며, 이에 합당한 새로운 산업정책과 경영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이 불확실한 국제 에너지 환경 아래서 우리 에너지 산업의 안정적 성장 기반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협상에서 에너지 산업은 자기혁신을 위한 시간을 조금 얻은 셈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에너지 산업의 국제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김진우/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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