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한국 사회 전반에 공론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몇몇 정책에 대해 공론화를 하겠다는 뉴스는 가끔 들어보지만, 실질적인 공론화 사례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에너지 분야에서 공론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정부는 작년 말 에너지정책 전반을 다루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설치하고 원자력 정책 등 갈등의 소지가 있는 몇몇 주요 정책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로 방침을 정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몇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공론화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공론화를 하자는 주장은 주로 갈등이 예상되는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 나타난다. 공론화를 통해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공론화에 대한 정부의 접근 의도도 상당히 갈등 예방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공론화의 목적은 갈등의 봉합이 아닌 합리적 정책결정에 그 중심을 두어야 한다. 갈등 예방의 수단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정책의 합리성보다는 참여자들의 협상에 의해 정책이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갈등 해결과 수용성 확대는 참여자들의 협상이 아닌, 숙의적 토론을 통한 합리성을 기반으로 얻어진다. 둘째, 공론화 추진 주체의 문제다. 우리 사회에 ‘위원회’라는 협의체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공론화 주체는 일반적인 협의체와는 달라야 한다. 공론화를 진행하는 주체는 이해관계에서 한발짝 떨어져서 전문가나 이해당사자로부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다양한 생각을 갖는 국민들의 소리를 잘 주워담는 일을 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당사자가 공론화를 진행하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론화를 진행해야지, 이들이 공론화 추진 주체를 구성해선 곤란하다. 공론화 추진 주체는 중립성과 독립성을 갖추어야 한다. 갈등봉합이 아니라 갈등 예방을추진주체는 이해당사자를 뺄것
복잡한 정책일수록 폭넓은 참여를
진행단계마다 투명한 공개를
공론화 서툰 우리사회를 위한 제언 셋째, 공론화 기간과 예산 문제다. 복잡한 정책일수록 공론화 일정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합리적 안을 도출해 내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 때문에 유럽에서도 원자력과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수년간의 공론화 과정을 진행한다. 공론화는 다수의 참여 프로그램을 통하여 진행되는 관계로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따라서 공론화 추진 주체는 공론화에 필요한 충분한 기간과 예산을 바탕으로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 예산의 낭비만 초래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넷째, 공론화 방법론에 대한 문제다. 공론화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어려운 문제에 접근할 때는 단계적으로 공론화를 진행한다. 공론화 진행 단계마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공론화 과정에서 논의된 대부분의 정보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것이 공론화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공론화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가 참여자의 대표성과 논의의 합리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체계화된 여러 참여 기법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정책 공론화는 과거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의사결정 방식에서 진일보한 정책결정 방식이다. 그러나 공론화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조사 없이 진행하다가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정부의 원자력 정책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 톱뉴스를 장식하였다. 내용인즉, 공론화 진행 과정의 잘못에 대해 환경단체가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법원은 공론화가 공평하게 진행되지 못하였으므로 정부는 원자력 정책을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공론화에 서툰 우리로서는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는 사례다. 정익철 /런던대(UCL) 환경과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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