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0 18:46
수정 : 2007.05.11 10:00
왜냐면
교토의정서에 따라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앞두고 있는 선진국 정부들은 지금 새로운 에너지 기술 개발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에너지 기술의 백년대계를 설계해야 할 산업자원부가 에너지기술평가원(가칭) 설립을 놓고 최근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에너지기술평가원은, 지금까지 개별법에 따라 에너지관리공단과 한국전력공사에 분산해 추진되었던 에너지·자원 개발과 연구개발 기능을 통합하여 연구개발 사업과 전기·가스·열병합·신재생 등 에너지원별 통합관리를 합리화하고 에너지 수요관리를 강화한다는 목적 아래 에너지관리공단의 부설기관으로 설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 계획발표 이후 한전의 입김과 산자부의 의심스런 행보가 이어지면서 에너지기술평가원은 갑자기 부설기관에서 독립재단으로, 또다시 민간재단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곧 에너지관리공단의 부설기관으로 설치하는 방안이 어느 순간 폐지되고, 독립기관 설립으로 급격히 방향을 돌렸다가, 기획예산처의 반대가 이어지자 갑자기 민간재단 설립쪽으로 또 방향을 바꾼 것이다. 더욱이 이런 졸속적인 사업진행이 국회와 에너지관리공단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닥치자 이번에는 민간재단의 형태를 갖되 연구·개발의 기획평가 기능을 분리한다는 궁색한 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국회 산자위에서도 무리한 민간재단 설립에 제동을 걸고 6월 국회에서 다시 논의를 거치자고 했지만, 산자부는 여전히 민간재단 설립만을 고집하고 있다.
추진과정서 민간재단으로 탈바꿈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개발은 경제성 이유로 뒷전으로 밀릴 판에 예산집행의 투명성은 어찌 담보하나 연구개발사업·수요관리 합리화 애초 취지와 거꾸로 가고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에너지기술 관련 연구개발 분야는 개발된 기술을 실증해서 보급하고 온실가스 감축 등 성과가 사회적으로 환류되는 일관된 메커니즘을 갖추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며, 환류구조가 형성되지 않으면 연구 분야는 연구자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말 것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관련 연구개발은 이미 상용화된 일반적인 산업기술 영역과는 달리 경제성과 신뢰성을 아직까지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경제성과 신뢰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현실화하기 어렵고, 공급의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뒷전으로 밀린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사회 재생에너지 연구·개발은 취약하며 결국은 기술개발을 초국적 에너지 자본에 의존하는 구조가 돼 있다.
미래 에너지원인 재생가능 에너지가 현재의 상업성과 경제성 여부에 좌우된다면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을 전제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끊임없이 실증 단계를 거쳐 연구·개발하고 투자를 진척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재생가능 에너지원 등에 대한 차액보전 제도, 관세 감면, 금융·세제 지원, 조달구매, 컨설팅 등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은 공적인 지원 형태가 아니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다. 만약 통합된 에너지기술 연구·개발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당연히 일관성 있는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 아래 진행되어야 하며, 이 역할은 현실적으로 에너지관리공단이 수행해야 한다. 에너지기술평가원 설립을 추진한 이유도, 그리고 애초 에너지관리공단의 부설기관으로 설치하도록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가 아닌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더욱이 졸속으로 설립된 에너지기술평가원을 통해 낭비될 국민의 세금은 어찌할 것인가. 에너지기술 개발과 관련하여 2007년 52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되어 있으며, 향후 1조원이 넘는 예산이 편성될 것이라 한다. 이 거대한 재원을 설립 방향조자 몇 번이나 바꾸며 억지로 만들어낸 민간재단으로 넘길 때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과연 이런 재정이 국민을 위한,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펴는 데 쓰일 것인지, 아니면 민간자본과 외국자본의 진출 통로를 여는 데 쓰일지, 또한 에너지 관료들의 자리보전과 허세를 부리는 데 쓰일지, 과연 누가 답변할 것인가.
김일수 /에너지관리공단 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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