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고건 전 국무총리가 대선을 포기한 데 이어, 4월 말에는 범여권의 희망이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마저 장고 끝에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금 여권이 국민들로부터 차가운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 두 후보들의 연이은 중도 포기의 큰 이유였지만 또 다른 공통적인 원인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자금동원 능력 부족’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다시 말해, 대통령 선거를 치르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데 이를 동원하기 위해서는 합법, 비합법적인 정치적 수완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고,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을 공무원 신분으로 살아온 만큼 이러한 자금 동원 ‘작업’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 현행 선거법상 대통령 후보 등록 자격은 ‘만 40살 이상의 모든 국민’(재외국민, 중범죄자, 현직 공무원 제외)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선거에 출마하려면 5억원이라는 큰 돈을 기탁금으로 내야 하며, 선거에서 10%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경우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정치자금으로는 5억원이 적은 돈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4석 정당인 국민중심당의 2분기 석달치 국고보조금이 1억6천만원이다. 군소정당에게는 5억원, 10% 득표라는 벽은 너무나도 높은 것이다. 기탁금 5억 득표율 10%군소정당에겐 너무나 높은 벽
선거공영제도 현실화해야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 재정적인 부담을 느끼는 원인은 비단 기탁금 제도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선거공영제가 유명무실하다는 데 있다. 선거공영제란 국가에서 벽보 부착, 연설장 대여 등을 맡아 함으로써 후보의 선거 운동 비용 부담을 줄이고 불법 자금의 유입을 막고자 하는 제도로 1963년부터 시행되었으니 그 역사가 벌써 40년을 족히 넘는다. 그러나 선거 유세 전략은 텔레비전 방송·광고를 지나 유시시까지 첨단일로를 걷고 있는데 반해 선거공영제에서 지원하는 선거 운동 방식은 벽보나 연설회장 대여 등 촌스럽고 별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다. 즉 정작 돈이 많이 드는 부분에 대해서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물론 어느 나라든 선거에는 돈이 많이 든다. 모든 후보의 모든 선거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좀더 많은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래야 군소정당에서도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있고, 심지어 무소속 후보라 할지라도 자질만 갖췄다면 대선 주자로서 한판 승부를 펼쳐볼 수 있다. 이러한 후보의 다양화는 한국의 정치적 스펙트럼의 폭을 넓히고 정치권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개혁의 흐름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한국 정치계에서 고질적으로 발각되는 불법 대선 자금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다. 대통령 선거 진입의 장벽을 낮추려면 먼저 기탁금의 액수와 환급 기준 지지율을 낮춰 잡을 필요가 있다. 또 대기업이 후보자에게 직접(물론 불법으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선관위에서 선거공영제를 통해 선거비용을 ‘제대로’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선거권뿐만 아니라 피선거권의 참여 폭도 현실적으로 넓힘으로써 국민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본령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이다. 이희정/연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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