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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1 17:39 수정 : 2007.05.21 17:39

왜냐면

세 아이들이 모두 흩어졌다. 큰 아이는 대학이 있는 이천으로 가고 둘째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마트로 가고, 이제 중학교 1학년인 막내 아들놈은 강화도 마리학교로 갔다. 아이들을 다 내보내니 갑자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면서 분노인지 슬픔인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치밀어오른다.

2007년 2월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양심수로 선정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지난 5월11일 무릎수술을 받으러 감옥에서 잠시 나와 외부병원에 입원했다가 수술을 마친 후 5월18일 다시 영등포교도소 독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삼성에스디아이㈜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고소해 2005년 2월22일 법정구속시킨 나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다.

지난 가을 감옥생활 중에 무릎을 다친 후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 찜질·파스 등으로 치료를 대신하다가 일년 동안 7번에 걸친 단식투쟁 후유증인지 무릎 통증을 호소하더니 물이 차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10년간 온갖 탄압 견디며 노동인권 투신하다 법정구속
삼성이란 재벌 대항 싸움 민주화 투쟁보다 힘겹다

10년 동안 삼성계열사의 해고자로 살면서 무노조경영을 지상과제로 알고 실천하는 삼성의 온갖 노동자 탄압의 실상을 알리는 일을 온몸을 바쳐 고발해 왔다. 하지만 결국은 삼성이란 재벌에 의해 법정구속까지 되었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비방할 목적’이 있었으며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이 개입해 있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과는 무관하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남편이 오로지 노동인권에 투신해 왔음은 지난 10년에 걸쳐 축적된 약간의 자료만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삼성의 무노조경영으로 인한 반인권성·반노동자성을 고발하고 탄압 사례를 모아 책을 발간하고 여타의 노동·인권단체들과 성과를 공유하면서 시정을 촉구해 왔다.

‘국제 양심수’로 선정됐을 당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까지 하며 석방을 촉구했다. 그러나 삼일절 대통령 특별사면 대상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감옥에서 세 번째의 봄을 보내면서 아버님과 어머님을 저 세상으로 보냈고 세 자식은 각각 고등학교와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2008년 10월7일 만기 출소일까지 1년여를 더 기다리란 말인가.

우리는 군사독재 아래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거대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살고 있다. 재벌의 독재 하에서 민주주의란, 이름만 민주주의일 뿐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지금은 재벌로부터 독립을 위한 투쟁이 과거 군사독재를 끝내기 위한 민주화 투쟁에 못지않게 험난한 여정임을 남편을 보며 뼈저리게 느낀다.


임경옥/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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