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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4 17:47 수정 : 2007.05.24 17:47

왜냐면

5월20일 〈한국방송〉 1텔레비전의 심야토론에서 ‘12월 대선: 시민단체의 바람직한 역할’이란 주제로 토론이 있었다. 여기서 선거와 관계없이 시민운동과 시민단체를 들추는 발언이 많았다. 그 내용 중에는 오류가 많아,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NGO)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시청자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 제기는 대체로 토론 테이블의 ‘오른쪽’에 앉은 토론자의 발언에 대한 것이다.(방송사에서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자리를 배치한 것 같다.) 이것은 나의 정치적 이념과는 관계가 없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잣대로 시민운동 전체를 파악하려는 그동안의 시도 자체가 커다란 잘못이다.

한국 시민운동의 과도한 정치성을 두고서는 그동안 논의가 많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민운동은 정치성을 띠게 되고, 그것은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다. 시민사회의 정치화 우려는 엘리트 민주주의에서 지배세력의 헤게모니 관철을 위한 전략으로서 참여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한국민간단체총람의 2006년판을 보면 그동안의 지적과는 달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의 수가 권력감시나 정책 제안 활동을 하는 ‘정책창도 단체’를 추월하였다. 미국에서는 우리와 반대로 정책창도 단체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빈약하여 미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이 저하된다는 우려가 계속 나오는 것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중립성 지키란 말은 지배 이데올로기 일조하란 말
시민단체 신뢰도 낮단 말은 왜곡된 조사 잘못 인용
반체제운동서 분화되었단 말을 어떤 의도가 담겼나

“시민운동의 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박효종 바른사회 시민회의 대표)는 명제도 중대한 오류를 담고 있다. 여기서 중립성은 시민단체 활동가나 자원봉사자가 정부 영역으로 진출해서 안 된다, 정당의 정책에 침묵하거나 최소한 양비론을 견지해야 한다 등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시민운동을 축소시키려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일조하게 된다. 중립성은 시민운동이 자발적 결사체 활동이라는 점에서 개별 단체의 운동 주제는 될 수 있으나, 운동의 대원칙으로 올려놓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시민단체의 기관 신뢰도가 5위로 밀려나서 신뢰도 회복이 중요하다”(김일 시민사회연구소장)는 발언도 문제가 많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기관 신뢰도에서 시민단체의 신뢰도는 매우 높다. 한국에서 2000년대에 들어와서 시민단체의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볼런티어21’이나 ‘아름다운재단’에서 조사한 바로는 여전히 시민단체가 가장 높다. 김일 소장의 발언이 작년 〈중앙일보〉의 조사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 데, 이 조사는 문제가 많았다. 영역별 기관 전체의 신뢰도가 아니라, 개별 대기업과 시민단체를 단순히 비교하여 조사하였다. 예를 들어, 삼성과 경실련을 조사한다면 두 조직의 관련자, 인지도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조사를 가지고 시민단체 전체의 신뢰도로 보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한국 시민단체는 1980년대 반체제 운동에서 분화되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외피를 쓰고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발언 또한 심각한 인식이다. 한국 시민운동이 민중운동에서 분화되어 이를 계승한 측면이 있지만, 이런 발언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일단 엔지오학의 연구자로서 한국에서 시민단체의 개념 범주에 이런 단체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나아가 어떤 시민단체가 아나키즘의 원리에 입각하여 무정부와 탈자본주의를 지향해 소공동체 운동을 한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다. 이런 운동에서 진행되는 지역자치와 지역화폐는 우리의 상상력과 삶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미세한 내용이 더 있지만, 마지막으로 들출 것은 토론자 모두 보수언론의 문제에는 함구했다는 사실이다. 언론은 시민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하나의 기업으로서 원칙적으로 시장영역에 속한다. 체계적 시각을 가지고 시민운동을 왜곡해 보도할 뿐만 아니라, 그 조직원리가 시민사회에 침투하여 시민사회를 식민화하는 문제가 오늘날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왜곡의 본류다.

박상필 /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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