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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4 17:50 수정 : 2007.05.24 17:50

왜냐면

지난 1월, 유신독재정치의 대명사였던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문 공개를 놓고 이를 마치 판결에 참여했던 판사 명단을 공개하기 위한 정치적 소행으로 몰아붙였던 일부 언론들은 요즘 다시 과거사위원회의 정원 증원에 대해 ‘먹고살기 바쁜 판국에 쓸데없는 과거사를 헤집고자 인원을 늘려 국고를 낭비하려 한다’며 야단법석이다.

비상임위원인 필자는 매월 두 번의 소위와 전체회의 참석 외에 가능하면 억울한 피해당사자나 관련자들을 만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비록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억울한 누명과 왜곡된 역사에 대한 ‘과거사 정리’는 필요하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무오사화나 갑자사화로 무고하게 처형됐거나 피해를 본 관련자와 그 가족들은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에 의해 모두 신원되었다. 심지어 성종 23년에 타계한 사림파의 종주 김종직에게 내려진 ‘문충’이라는 시호가 1년 뒤 훈구파의 공격을 받아 ‘문간’으로 폄하된 억울함은 200년 후 숙종 때 다시 ‘문충’으로 복원되는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나 억울함에 대한 명예회복 조처는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과거사 정리 사례는 신군부에 의해 ‘폭동’으로 매도당했던 5·18일 것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5·18의 평가는 역사에 맡기겠다’고 천명했다가 대학교수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다. 온 국민의 열화 같은 여론에 밀려 결국 특별법이 제정되고 관련 주모자들이 구속되는 한편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명예회복되는 동시에 그 후속 조처가 병행되었다. 요즘 한창 과거사위에 대해 갖가지 부정적 비판을 가하고 있는 보수언론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의 모든 언론 매체들은 한결같이 5·18 과거사 정리의 당위성 여론 조성에 적극 동참했음은 물론이다.

굴절된 역사의 희생자 너무 많아 일일이 만나기도 너무 바쁘다
보수언론은 정권에 대한 미움을 과거사 정리에 투영하지 말라

일부 보수언론에 묻고 싶다. 5·18 과거사 정리를 위해 청문회를 여는 등 노태우·김영삼 정권 10여년에 걸쳐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진행되던 당시에는 왜 막대한 국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논리나 비판을 펼치지 않았는지, 최근 규명된 〈민족일보〉 조용수의 죽음이나 인혁당 사건으로 처형된 8명과 그 가족들이 당한 고난은 억울하지 않다는 말인지, 여러분의 가족이나 측근들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쓸데없이 과거사를 헤집는 일’이라고 주장할 것인지.

한국전쟁 전후의 무고한 인명피해나 독재정권 시대의 인권유린 사건 등 억울하고 왜곡된 과거사는 헤아릴 수도 없다. 지금 그런 억울함이나 역사왜곡을 바로잡고 화해하자는 것이 과거사위 발족의 취지다. 가깝게는 30년, 멀게는 60년이 된 왜곡된 역사와 억울함을 무한정 방치할 수는 없다. 굳이 억울한 희생자들이 구천을 헤매고 있다는 표현까지 동원하고 싶지 않다. 반대 논리는 언필칭 ‘경제가 어려운데 무엇 때문에 과거를 헤집느냐’는 것이다. 비록 요즘 경제 순환주기가 하강곡선을 긋고는 있지만 그래도 우린 세계 10대 무역대국이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바짝 다가서 있다. 그렇다면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되고 국민소득 5만달러 내지 10만달러 시대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물론 과거사 정리를 위한 기구가 방만하게 설치됐다는 주장에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 없지 않다. 그 비판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수용하여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과거사 정리 자체를 놓고 마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처럼 호도하는 언론의 자세는 온당치 않다. 언론의 임무는 과거사위에 대해 정권에 대한 미움을 연계해 무작정 부정적 시각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과거사 정리의 당위성을 수용하고 그 정리 과정을 엄밀하게 감시하면서 잘못된 정치적 결정이나 합당한 과거사를 오히려 왜곡시켜 결정하는 사례 등을 밝혀내고 비판하는 일이다. 언론의 건전한 선도와 감시와 시비를 기대한다.

김영택/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 비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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