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최근 진료 현장에서는 파스 처방을 두고 의료급여 환자와 승강이를 종종 벌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파스가 꼭 필요한 환자인데도 처방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진통제를 먹으면 속쓰림과 같은 위장장애가 있어 약 대신에 파스를 붙이는 환자가 많다. 그들에게 파스 처방이 봉쇄되었으니 약도 못 먹는데 파스도 안 주면 어떻게 하느냐는 하소연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보건복지부의 고시에 따라 4월28일부터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처방하던 파스가 전액 본인부담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파스 처방 지침을 보면 의사로서 실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파스를 처방하려면 수술환자만 하라는 것이다. 웬 수술환자에게 파스로 통증을 조절하란 말인가?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적정 의료 이용을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병원 이용 때 본인부담으로 하거나, 의료 이용이 많은 수급자는 특정 의원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등의 사회복지를 후퇴시키는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그때 같이 시행한 것이 파스 같은 필수 의약품에 대한 비급여(전액 본인부담) 조처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건강보험에서 보험혜택을 주는 것을 의료급여자에게만 제한하는 것은 차별행위임을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한발 물러서 경구약을 복용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는 파스를 처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를 규정한 ‘의료급여법 시행규칙’을 보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경구투여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진통·진양·수렴·소염제인 외용제제를 처방·조제받은 경우 그 외용제제 비용”은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라는 것이다. 곧 경구 투여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파스를 처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비롯된다. 보건복지부는 ‘경구투여가 불가능한 경우’를 “먹는 약은 진통·진양·수렴·소염제뿐만 아니라 기타 모든 약을 포함하므로 의료급여 환자가 어떤 종류의 약이든 먹을 수 있으면 원칙적으로 파스류에 대한 약값은 의료급여 환자가 전액 부담”토록 하겠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다만, “수술 직전후 금식기간 등은 경구투여가 불가능한 경우이므로 전액 부담의 예외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경구투여가 불가능한 경우’는 약을 입으로 먹기 불편한 때이지 수술 직전후로 해석하면 곤란…복지부 ‘이상한 방침’에 헛웃음만 의사로서 생각해 볼때 ‘경구투여가 불가능한 경우’란 진통제를 입으로 먹기 어려운 경우를 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먹는 진통제의 경우 속쓰림과 같은 위장장애 부작용이 흔하다. 심한 경우 출혈성 위염이나 위궤양이 합병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환자들의 경우 먹는 투약 대신에 피부로 흡수토록 하여 위장장애를 초래하지 않는 경피투약, 즉 파스제제 처방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참으로 희한한 해석을 내놓았다. ‘경구투여가 불가능한 경우’란 모든 약의 경구투약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통제뿐 아니라 다른 모든 약도 먹을 수 없는 조건에서만 파스 처방이 가능하다고 해석한다. 그러니 오직 파스를 처방할 수 있는 경우는 수술 후 입으로 밥도 먹지 못해 금식해야 하는 환자에게나 가능하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수술 직후 환자의 심한 통증을 조절하라고 파스를 붙이란 말인가? 파스류는 단순 치료보조제에 불과하다고 강변하는 보건복지부가 수술환자에게는 파스로 통증을 잡으라고? 너무도 어이없다. 모든 약의 경구투약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환자는 어떤 상태여야 할까? 의학적으로는 입으로 약뿐만 아니라 밥도 전혀 먹을 수 없는 상태로서 의식이 없는 환자나 수술과 같이 한시적으로 금식을 해야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환자에게는 파스를 처방하라고 친절히 단서를 달고 있으니, 어찌 실소가 나오지 않겠는가? 단언컨대 수술환자에게 파스를 처방하는 의사는 단 한 사람도 없다!파스와 같은 경우로 비춰봐도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의료 적정 이용을 유도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에 신뢰가 가질 않는다. 보건복지부의 관심사는 적정 의료가 아니라 급증하는 의료급여비 지출을 줄이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가난한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는 국가 재정을 투입하기 싫다는 것 아닌가? 만일 나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한다면 보건복지부는 즉각 황당한 파스 처방 고시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 김종명/가정의학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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