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장항 갯벌이 살길을 찾았다. 서천군이 갯벌을 매립해 산업단지를 만드는 계획 대신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 등을 포함한 정부 대안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서 장항 갯벌 매립을 둘러싼 긴 갈등은 마무리되고, 지역발전과 갯벌보전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협력이 모색될 수 있게 됐다. 장항 산업단지 계획은 이미 1989년에 마련되었다. 노태우 정부가 전북에 새만금 갯벌 간척을 발표하면서 충남에도 덩달아 선물을 준 것이었다. 하지만 ‘단지의 수요’와 ‘사업의 타당성’이 의문인 상태에서 계획은 축소되고 변경되기를 반복했다. 결국 2730만평 산업단지에 자동차, 화학산업 등을 넣겠다는 계획은 374만평의 정체가 모호한 계획으로 축소되어 노무현 정부 들어서야 추진됐다. 15년을 끌어온 사업을 더 미룰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의 시작은 ‘사업성’과 ‘환경영향’에 대한 논란의 출발이었고, 3년여에 걸친 갈등과 분란의 기폭제였다. 서천군민들은 지난 18년간 국책사업계획 때문에 각종 지원에서 소외받아왔는데, 이마저도 무산될까 몸이 달았다. 인구가 15만명에서 6만5천명으로 쇠락하고, 충남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 된 현실이 계속될까 경악했다. 주민들은 “우리도 꿈이 필요하다”라고 절규했고,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한 ‘장항산단’을 위해 모든 걸 걸었다. 집회, 단식, 등교 거부까지 고강도의 투쟁이 전개됐다. 사업성과 생태보존 논란 속18년 끌어온 장항산업단지
개발소외 주민과 타협안 합의
상생·화합의 성공모델 기대 하지만 그동안 국민들의 인식이 변했고 갯벌매립 주장은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최근 15년 사이, 갯벌 면적의 20.4%(653㎢) 자연해안선의 33.7%(4015㎞)가 줄어들면서, 서해연안의 어획고는 47% 감소(90년 이후)하고 수산물의 수입량은 69.3% 증가(2000년 이후)하는 등 상황이 심각했다. 또 서천 장항갯벌은 새만금 간척지로부터 10㎞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국민의 시선을 피하기도 어려웠다. 정부조차 앞으로는 갯벌 매립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는 상황에서, 장항갯벌만 예외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대립의 끝이 보이지 않는 속에서,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환경부 등의 제안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서천군은 반년 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중앙정부에 대한 지역의 신뢰가 바닥나고, 내부의 반대도 적지 않았으며, 선례가 없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려운 조건에서 나온 서천의 합의는 개발과 보전의 모순을 뛰어 넘는 상생과 화합의 모색이라 할만하다. 서천의 모델이 성공한다면, 이는 지역주민들 그리고 갯벌에 기대 사는 어민과 생명들 모두에게 큰 선물이며, 친환경적인 지역 발전에 관심있는 지방자치단체들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서천의 역사가 기대된다. 정부의 제안이 지역발전과 서해생태계 복원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잘 다듬어지길 바란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섬세하고 진심어린 방안들도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서천의 합의는 노무현 정부의 환경현안 중 유일하게 환경이 고려된 해결로 기록될 것 같다. 주요 환경 이슈마다 점잔 빼고 뒤로 물러서 있던 환경부서들이 타협안을 만들기 위해 수고한 덕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합의는 환경부서들의 위상과 역할을 확인한 계기이기도 하다. 염형철/환경운동연합 국토생태본부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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