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금융노조는 금융경제연구소와 더불어 2005년부터 공공성을 갖춰야 할 산업이나 국가 안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업에 대하여 미국의 엑슨-플로리오법과 같은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계속 주장해 왔다. 엑슨-플로리오법은 미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경영권을 취득하려는 외국인의 시도가 국가 안보에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인수를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미국 종합 무역법에 포함시킨 조항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조건으로 외환거래를 자유화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을 규제하던 규정들을 대폭 개방 쪽으로 수정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은행산업의 외국자본 종속화 현상이 세계 제일 수준을 보이고 있는 지금, 한국의 사회와 경제는 설비 및 기술개발 투자 저하, 일자리 부족,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의 대량생산 등 여러 가지 병폐로 시름하고 있다. 선진국이 다 하는 안전장치를 만들자는데자본자유화 규약에 위배된다며
정부는 자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폐해의 대가를 누가 치를 것인가 다른 산업의 혈맥 구실을 하며 공공성을 유지해 왔던 국내 굴지의 은행들마저 외국의 투기자본에 헐값으로 팔려 나갔고,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글로벌화, 자유화, 자본의 금융화 현상은 경제사회적 대전환을 강제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이념과 이해관계를 넘어서 힘을 모아 법률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탓하고자 하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최소한 나라의 안보나 경제의 근간이 되는 산업을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강화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선진국들이 하고 있는 수준의 안전장치를 두자는 것이고 이는 바로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정부에서 말하는 법률 제정 반대 논리는 근거가 희박하다. 첫째, 다른 나라에도 있는 제도를 한국이 도입한다고 해서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국가 안보나 기간산업의 저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모펀드, 헤지펀드 따위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더 큰 문제다. 오히려 법률 제정은 투기자본을 사전에 걸러내는 구실을 할 것이고, 이는 바로 국가의 신용도나 이미지를 높이는 순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는 투기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국제적 어젠다로 올려놓고 있으며, 또한 경제계, 노동계를 가리지 않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지하고 있다. 둘째, 정부의 또다른 반대논리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 이미지나 ‘반외자’ 정서를 얘기하고 있다. 외신을 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개방 정도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외환은행의 론스타 사례와 같이 행정상의 투명성 부족이나 정부 정책이나 행정의 일관성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덜 개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장기적인 확신을 갖고 들어 올 수 있도록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하여 믿음을 달라는 것이다. 셋째, 기간산업을 보호하는 법률 제정은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본 자유화 규약에 위배된다는 논리는 정부의 자발적 반대의지 표명이다. 이러한 규약이나 협정에는 적어도 국가 안보나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책이나 규제는 국가 고유의 권한으로 대부분 예외 인정을 하고 있다. 다자간 협정을 통해 양허가 된 산업이라고 하더라도 그 산업 전체에 대한 시장 접근권이나 내국민 대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적용하느냐는 바로 정부의 몫이고 역할이다.
따라서 기간산업 보호 추진의 기본 목적은 어떤 특정한 이익집단에 혜택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탓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이해관계를 모두 내려놓고 힘을 합하여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보자는 것이다. 정부가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계속 추진하고 현시점에서 이 법안이 제정되지 못한다면 다가올 미래에 나라와 국민한테 돌아올 희생과 대가가 엄청나게 클 것이다. 그 책임과 비난은 바로 정부로 돌아갈 게 뻔하다. 안기천 금융노조 대외협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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