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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5 18:15 수정 : 2007.07.05 18:15

왜냐면

현재 각급 학교에 설치된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초중등 교육법’에 따라 구성되는 법적 기구다. 이 법률과 시행령 및 조례에 근거해, 규정된 심의·자문·의결사항은 반드시 심의·자문·의결을 거치도록 한, 그야말로 교육 최전선에서 교육 자치를 위해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기구다. 집행기관인 학교장과는 독립되어 있으며, 나아가 학교장의 부당한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년 반 정도 학운위 활동을 하면서 이런 임무 수행이 제도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학교는 그 흔한 촌지나 잡부금 문제 외에도 크고 작은 학교 행사, 보수 및 유지 공사, 물품 구입, 급식, 인력 수급, 교재·부교재 선정 등 하나하나가 수백만에서 수천만원이 오가는 일들이 무시로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비리 개연성이 상존하며, 그래서 교육행정은 정부 차원에서도 청렴도가 최하위 수준이다. 학운위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나마 조금은 개선될 여지가 있으려니와, 현 상태를 보면 이는 지극히 비관적이다.

가령, 적게는 수억 많게는 수십억에 이르는 예결산 심의 같은 경우는 그 막대한 규모에 걸맞게 학운위 내 소위원회를 만들어 심도 있게 논의하도록 권장되고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하지만, 이는 무시되고 일방적인 보고와 통과로 끝난다. 1년 예산안은 그 학교의 한 해 살림 전체를 의미하므로, 이후 1년 동안 학운위는 학교의 집행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심의사항인 안건들을 실행 후 보고하거나 보고마저 하지 않는 사례도 있고, 심지어는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안건의 심의를 방해하는 일도 벌어진다. 학운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음성적인 노력 때문에 학교 쪽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위원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학운위는 교육자치 위한 법적 기구
전횡 견제장치지만 사실상 기능 마비
회의 안건 사전 공지 없이 즉석 배부
“안지킨다” 항의하면 사과 한마디뿐
불합리한 행정 합리화해주는 도구 전락

그 밖에도 많은 경우, 그야말로 학교의 운영에 관한 사항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다. 예를 들면 ‘서울특별시 학교운영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를 보면, 학운위 회의 소집과 관련해 “회의 개최 7일 전에 소집 공고와 함께 회의 안건을 첨부하여 위원에게 개별 통지해야 한다”고 하여 심도 깊은 논의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하였고, 회의 당일 회의장에 앉아서야 안건을 받아 즉석에서 논의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위원들이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심의를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학교 쪽에 규정 준수를 요구하면 돌아오는 것은 짤막한 사과 한마디뿐, 다음 회의에서는 여지없이 비슷한 규정 위반이 반복된다.

학운위를 포함해 학교의 모든 의사소통은 학교장을 거치도록 되어 있어서 학교장이 이를 막으면 일반 학부모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게 된다. 학부모 위원은 자녀를 학교에 볼모 아닌 볼모로 잡힌 상태인지라 학교 쪽 심기를 고려하느라 감히 안건에 토를 달지 못한다. 교장의 근무평가에 목을 매달고 있는 교직원 위원 또한 그러하다. 결국 학교장의 발언권이 강한, 말하자면 학교장의 전횡이 심한 학교의 경우, 학운위는 심의 기구가 아닌 추인 기구가 되어 오히려 그릇된 학교 운영과 불합리한 행정을 합리화시켜 주는 도구로 존립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법적·제도적인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만 있을 뿐, 지키지 않으면 가해지는 처벌이 없기 때문이다. 학운위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수준의 제재 수단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최소한 예결산 심의 같은 일부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소위원회 구성을 통한 심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별 학부모라도 상급 교육청에 단계적으로 손쉽게 신고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학교 재정뿐만 아니라 행정도 치밀하게 감사해야 한다.


김해수 서울 포이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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