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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길 |
등촌 삼거리에서 목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꽤 높은 육교가 하나 있습니다.
쌩쌩 앞만 보고 달리는 차들,
그 육교 밑으로 손을 반만 든 허리가 꾸부정한 할머니가
지팡이를 들고 무모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달리던 차를 세우고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위험한 순간, 버럭 화가 치밀어 오르진 않고
멍하니 높다란 육교만 바라보았습니다.
“이 노인네가 미쳤나”
쏟아지는 육두문자 속에서도
검은 아스팔트를 지팡이로 콕콕 찍으며 걷는 할머니,
할머니가 널찍한 차의 길을 빼앗은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길은 육교가 아니었습니다.
그 육교는 차를 위한 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가야하는 그 길엔 차만이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쌩쌩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들이 그 길을 빼앗은 것입니다.
교통경찰과 빨간 신호등만을 경계하며 달렸던 우리들이
그 길을 빼앗은 것입니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강현/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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