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앵글로색슨의 삶을 흉내내는 영어마을40여곳 교육효과 적고 경제손실 막대
미국말은 돈과 시간 빨아들이는 블랙홀
일반 시민 모두를 왜 열풍에 몰아넣나 최근에 부산시와 인천시는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영어도시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국제도시, 영어가 자유로운 도시’를 만드는 사업의 실질적 내용은 두 도시가 별 차이가 없다. 부산이든 인천이든 사업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영어 사용환경 조성’이다. ‘영어교육 혁신’을 내세우고 있으나 교육부가 하던 일과 대부분 겹친다. 시민의 영어 능력을 높인다는 계획도 부산과 인천이 같다. ‘영어 사용환경 조성’이란 미국말이 쓰이는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영어거리, 영어마을, 영어도시’를 만든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작업을 하는 까닭은, 말이란 그것이 쓰이는 구체적 환경이나 상황과 떼어서 배우기가 어려움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구체적 환경이나 상황은 문화 또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언어는 문화나 삶의 방식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중립적인 매체가 아니다. 이 영어도시 만들기는 사실상 작은 미국을 만드는 것이고, 앵글로색슨의 삶을 흉내내는 것이다. ‘국제화 교육도시 사업’을 하는 경남 밀양시는 아예 ‘작은 미국’(Little US)이란 이름을 쓰고 있기도 하다. 매끈한 영어가 미래를 보장하는 현실은, 앵글로색슨족 숭배를 낳고 있다. 앵글로색슨계 원어민 강사들은 이땅에서 미국말만 가르쳐도 ‘임금 대접’을 받으며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다고 한다.(<조선일보> 7월28일치) 영어도시 만들기는 이미 실패한 영어마을 만들기를 더 큰 규모에서 하는 사업이다. 영어마을은 이미 온 나라에 40여 곳이나 있는데, 교육 효과도 적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다. 애써 ‘작은 미국’을 만든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미국말을 쓸 현실적인 필요가 그리 높지 않다는 방증인 셈이다. 따라서 문제를 푸는 방법도 매우 쉽고 간단하다. 통·번역 전문 인력을 양성하면 된다. 일반 시민을 영어 배우기로 내몰 필요가 없다. 또 미국말 숭배를 부른 요인을 없애면 된다. 오늘날 미국말은 우리의 돈과 시간을 끝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사교육비 가운데 40%가 미국말 배우는 데 쓰인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서비스 수지 적자 규모가 220억∼230억달러에 이르러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오를 기세라고 한다. 여기엔 조기유학과 어학연수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학생이든 어른이든 영어 공부로 나날을 지새운다면 우리의 삶과 생각이 뿌리뽑히고 만다. 영어 공부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는 요즈음, 영어 공부에 도움이 안 되는 우리 현실은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개조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이런 생각은 우리 현실이 미국말 배우기를 위해 존재하는 양 착각을 일으킨다. 몇몇 학교에서 이른바 영어 몰입교육을 한다는데, 이는 사실상 우리말글 버리기 운동이다. 또한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영어를 미리 배울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지난날 한문을 배울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이해의 궁극적인 매체는 모국어이며 외국어도 이를 통하여 배울 때 가장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한문 숭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또다시 미국말 숭배가 휘젓고 다닌다. 실패한 영어마을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영어도시 만들기 사업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돈만 많이 쓰고 효과는 없을, 실패가 예정된 사업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김영환/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