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정부는 보험재정 안정이라는 명분에대체조제도 모자라 성분명 처방 내놨지만
이는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한 것이다
특정집단 이익에 휘둘린 안전 외면 안돼 ‘성분과 약효가 같고 가격만 다르다면 그 약의 선택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현행제도에, 그 선택권은 약사에게 있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한 의약품, 곧, 약효가 같다고 입증된 의약품에 대해서는 의사가 ‘가’라는 약을 처방해도 약사가 성분이 같은 ‘나’라는 약으로 바꿔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을 둘러싼 갈등 이후 의사와 약사 사이 의약품 처방권과 조제권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는 두 집단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눈치다. 의사들은 성분이 같아도 회사마다 만드는 방식이 다르고, 그에 따라 효능·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므로 의사가 상품명으로 처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약사들은 같은 성분의 약 종류가 너무 많은데 어떻게 그런 약을 다 준비해 놓느냐며 지금도 동네 약국들이 견딜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의사들이 비싼 오리지널 약을 처방해도 약사들이 싼 약으로 바꿔주면 보험재정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대체조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한다. 의사와 약사 양쪽 주장 모두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의약품 선택권은 의사나 약사 둘 중 하나가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의료 소비자의 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환자-의사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 부권주의적인 관계가 계약관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의료시스템 내에서 의료 소비자들이 의사의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면 점점 의료인은 충분한 설명을 하고 의료 소비자가 선택권을 행사하는 관계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자면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의료시스템 내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약품 선택권도 마찬가지다. 성분과 약효가 동등한 의약품의 선택권은 의사도 약사도 아닌 소비자의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소비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체조제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대체조제도 모자라서 이제는 성분명 처방 제도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체조제는 약효가 같다고 입증된 약만 바꿔줄 수 있는 것이라면 성분명 처방은 약효 동등성이 입증되지 않았어도 성분만 같다면 약사가 바꿔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소비자의 선택권 문제를 의료부문까지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 치자. 그럼에도 대체조제와 성분명 처방 정책의 근거는 궁색하기만 하다. 보험재정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비싼 약을 처방하면 뒷돈받는 사람들이고, 약사들은 의사가 비싼 약을 처방해도 국가 보험재정을 아끼기 위해 싼 약으로 대체해 줄 것이란 논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의약품은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으로 나눈다.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 없이 복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으로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하는 의약품이다. 일반 의약품이란 잘못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심각한 정도가 약해 소비자 스스로 선택해서 복용할 수 있는 의약품을 말한다. 선택권은 의사와 소비자한테 있고, 이렇게 선택된 약을 약사가 적절히 복용하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의약품 선택권을 둘러싼 논쟁은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한 채 특정집단의 이익 챙기기로 휘둘려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의료 소비자의 권리 보장과 국민의 안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해 주길 바란다. 대체조제와 성분명 처방 정책은 의료 소비자 견지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권용진/서울의대 의료정책연구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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