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BBC 존재가치의 원천은 고액 수신료상업방송에도 영향줘 공익성 견인
오랫동안 묶인 수신료 현실화하면
시청률·광고주·정부로부터 독립 공영방송을 언급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비비시>(BBC)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비비시>는 영국이 가장 자랑하는 문화적 기구이며 세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공영방송사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비시>의 존재가치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1979년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내건 대처 정부는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는 <비비시>를 민영화하려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985년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 옹호자였던 앨런 피콕을 수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들은 ‘피콕위원회’로 하여금 ‘시장질서에 걸맞은 <비비시>의 미래’를 제시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작 피콕위원회는 대처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영국에서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는 <비비시>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는 <비비시>의 수신료 인상은 물론 오히려 수신료를 물가 인상에 연동하여 올릴 수 있도록 조처해 주었다. <비비시>의 수신료 재원을 둘러싼 논란은 노동당 집권 시절에도 그치지 않았다. 수신료가 연간 24만원(한국의 8배)에 달하는 큰돈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이 <비비시>의 민영화를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는 ‘<비비시>의 존재가치’에 과연 수신료 재원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밝혀 주었다. 이로써 수신료 재원과 <비비시>의 존립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매킨지의 결론은 “<비비시>의 성과는 수신료 때문이며 이는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는 세계 공영방송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매킨지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공적 기능은 다른 상업방송의 공익성에까지 영향을 끼쳐 수신료 재원은 전체 방송의 공익성을 견인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결국 영국의 자랑이자 세계 공영방송의 전범인 <비비시>의 존재가치는 다름 아닌 수신료 때문에 가능하며, 방송이 공익적으로 되려면 수신료를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공영방송이 상업적 자본에 의존하게 되면 시청률이나 광고주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정부 예산에 의존한다면 정부로부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공영방송에 가장 이상적인 재원은 수신료다. 수신료를 통해 모든 시청자는 공영방송의 운영 주체가 되고, 공영방송은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들에게 공적 책임을 지게 된다. 이러한 틀 속에서 <비비시> 같은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이 형성되어 온 것이다. 지난 7월, <한국방송>(KBS) 이사회는 수신료 인상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하였다. 9월 정기국회에서 가부간 결론이 나겠지만 이번 <케이비에스>의 수신료 인상은 지난 27년간 지속되어온 2500원의 수신료만으로는 공영방송 <케이비에스>를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과, 상업적 유료방송의 범람으로 인한 방송환경의 질적 저하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아울러 영국이 자랑하는 <비비시>처럼 세계 유수의 공영방송으로 우뚝 서기 위한 야심찬 비전을 펼치기 위함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왜 한국의 <케이비에스>는 <비비시>처럼 훌륭한 공영방송사가 되지 못하는가” 하는 비판을 해왔다. 비록 <케이비에스>의 문제가 경제적 측면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비비시>와 같은 공영방송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재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재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비비시>와 같은 공영방송은 기대하기도 어렵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재원의 문제를 해결해 준 이후에나 “왜 <케이비에스>가 <비비시>와 같은 공영방송사가 되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이 타당해질 수 있다. 월 2500원의 수신료로 요구하는 <케이비에스>의 공익적 역할에 대한 기대는 가슴 벅찬 이야기지만 너무나 버겁고 힘들다. 김대식/KBS 방송문화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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