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9.03 18:11 수정 : 2007.09.03 18:11

왜냐면

서울시교육청(이하 교육청)은 지난 8월17일,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이하 동호공고)와 아현산업정보학교를 폐교시키고, 아현산업정보학교 터에 ‘서울방송문화고등학교’(이하 방송문화고)를 설립하겠다는 행정예고를 하였다. 교육청 발표대로라면 동호공고는 내년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고 현 재학생이 모두 졸업하는 2010년 폐교된다.

교육청은 2006년 7월7일 동호공고를 ‘좋은 학교 만들기 자원학교’로 지정하고 교육격차를 해소하려 3년 동안 행정·재정적으로 집중 지원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 10월 동호공고를 방송·영상 특성화 고등학교로 지정하여 2008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여 운영하기로 했다. 교육여건이 열악한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며 좋은 학교 만들기 정책을 시행하고 방송·영상 계열의 특성화 학교로 지정해서 그에 대한 준비를 시키다가 갑자기 폐교 결정을 내린 것은 실업계 학교 구조조정을 위한 명목이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실업교육을 활성화시킨다는 교육청의 말은 다 허울이었나?

서울시 공정택 교육감은 200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동호공고를 이전하고 초등학교를 설립하기로 약속했다. 올해 5월14일 서울시 교육위원회 시정질문에서 교육감은 동호공고를 옮기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두 달이 채 못 된 7월12일 동호공고를 폐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육감은 민원이 있으면 대책 없이 멀쩡한 학교를 옮기기로 약속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폐교시키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정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실업고를 혐오시설 취급하는 민원에 밀려
특성화고교 약속했다 폐교하기로 번복
첫 입학생이면서 마지막 졸업생이 되는
아이들은 냉대를 졸업도 하기전에 체득
학교터도 없이 지은 잘못을 왜 떠넘기나

동호공고는 2005년 방송·영상 특성화 고등학교로 전환하기로 확정됨에 따라 올해 방송영상과를 신설하고 방송영상과 두 학급을 포함하여 여섯 학급 178명의 학생을 모집하였다. 기존 재학생들과 더불어 이 학생들은 적성과 진로에 맞는 실업계고를 용기 있게 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실업계 출신이 받는 냉대를 졸업 전부터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꿈과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교육이 도리어 실망과 좌절을 가르치는 이러한 상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더구나 올해 신입생 중 특히 방송영상과 학생들은 신설 학과 첫 입학생이면서 마지막 졸업생이 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번 폐교 결정을 발표하면서 이 학생들에 대한 대책 한 줄 언급하지 않은 교육당국에 분노한다. 방송영상과를 신설해 1기 학생을 모집하고 이 학생들에 대한 아무런 조처 없이 바로 폐교를 결정하는 것은 이 아이들과 보호자에게 일종의 사기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교육청은 여론과 지역이기주의에 밀려 동호공고 폐교 후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5천가구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면서 처음부터 학교 터를 마련하지 못한 건 서울시와 교육청의 잘못이다. 학교 터 없이 대규모 단지가 건설된 인·허가상의 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민원을 이유로 기존 학교를 헐고 초등학교 건립을 약속했는데, 중학교에 대한 민원이 생기면 또다시 초등학교를 폐교하고 그 자리에 중학교를 지을 것인가?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2005년 10월, 동호공고를 남영동 옛 수도여고 자리로 이전하는 교육청 안을 부결하였고, 올해 초에는 마곡지구 이전 역시 반대하였다. 주민 민원을 이유로 대안 없는 반대를 고집하는 교육위원회는 교육 자치를 실현한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교육위원 직선제를 대비하여 소속 지역 주민의 환심을 사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닌가?

이번 동호공고 문제는 학교의 존폐 여부를 떠나 일관성 없이 주민 민원에만 끌려다닌 교육정책과 책임지지 않는 행정관료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결정으로 가장 피해를 볼 동호공고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가? 폐교될 학교에서 재정적·시설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할 재학생들에 대한 논의와 대책은 도대체 어디에서 해야 하는가? 다수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권리와 행복은 무시하고 짓밟아도 되는 건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화장장, 방폐장 수준의 시설로 취급하여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아현동과 남산타운 주민들의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서울시교육청 누리집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실업계 학교에 대한 천시와 냉대 그리고 지역이기주의의 한 모습을 본다.

이상조/서울 동호정보공업고 교사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