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바를 모르진 않지만, 나는 정 교수가 독도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운명적인 태도로 이를 표현하고 악마라는 말을 써서 대화 문을 아예 닫아두는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옥석/창원대 영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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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론적으로 보면 곤란하다 |
반론-정현기 교수의 ‘폭력의 사슬과 착한 일본인들’을 읽고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바를 모르진 않지만, 나는 정 교수가 독도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으며, 운명적인 태도로 이를 표현하고 ‘악마’라는 말을 써 대화문을 아예 닫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3월24일치 ‘왜냐면’에 실린 정현기 교수의 글을 잘 읽었다. 그의 글이 울화의 감정을 시원하게 해주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사안과 인간을 보는 눈이 지나치게 비관론적이고 단순하고 결정론적이라 여겨진다.
첫째, 정 교수는 어떤 사안에서는 착한 사람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일 수는 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말 그대로 마음씨가 곱다는 뜻으로, 마음씨 좋은 사람들은 민주사회에서 선한 의도로 단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착한 사람은 강한 연대의식을 공유하여 선하고 올바른 일을 꾀할 수 있다. 일본에도 착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잠재적 능력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람들의 부류는 중요한 사안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닐까? 무관심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 교수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그는 “인간 사회는 폭력사슬에 얽혀 사는 인종과 참는 사슬에 묶여 사는 인종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게, 또 폭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보는 것이다. 정녕 그러한가? 인간 사회는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지닌 중간적인 부류가 존재한다. 그들이 사회의 향방을 좌우하기도 한다.
셋째, ‘악마’라는 ‘말’ 문제다. 그는 악마의 보기로, 한국의 몇프로 안에 드는 부류는 악마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이 수사적인 표현임을 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수사적으로도 지나친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악마들과 일본에 있는 악마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가 악마라는 말을 쓴다면 그 누가 악마와 대화하며, 설득할 수 있겠는가? 아예 대화라는 말은 접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나치게 결정론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몇프로 안 되는 수의 악마들에게 참다가 죽는 족속은 언제나 빼앗기거나 먹히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성이 지닌다고 보는 유대관계와 선의와 용기를 잠시 잊은 듯하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문제를 더욱 운명적으로 화석화한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바를 모르진 않지만, 나는 정 교수가 독도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운명적인 태도로 이를 표현하고 악마라는 말을 써서 대화 문을 아예 닫아두는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옥석/창원대 영문과 강사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바를 모르진 않지만, 나는 정 교수가 독도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운명적인 태도로 이를 표현하고 악마라는 말을 써서 대화 문을 아예 닫아두는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옥석/창원대 영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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