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소월은 내다보았나 보다. 그의 시 <초혼>은 오늘날 서해의 섬 굴업도가 겪는 위기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웠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1995년에 핵폐기장이 될 뻔했던 곡절을 겪었던 유서깊은 섬 인천 옹진군 굴업도에는 1940년대에 남한에서 멸종된 대륙사슴으로 보이는 사슴이 자연 번식을 한다. 주민이 키우던 사슴들이 울타리를 넘더니 섬에서 스스로 번식을 하여 그 수가 100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슴들이 이곳에서마저 멸종될 위기에 놓였다. 씨제이그룹에서 이 섬을 통째로 사들여 골프장을 비롯한 대규모 위락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인천시에 제출하였는데, 사업 제안서에는 이 사슴의 보호 가치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반달가슴곰이나 황새처럼 멸종위기 종들을 복원하기 위해 학자나 국립공원이 몸부림치는 움직임과는 전혀 딴판이다. 심지어 씨제이의 사업제안서에는 굴업도에 보호가치가 있는 동식물이 전혀 없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굴업도에는 사슴뿐 아니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 동물인 먹구렁이와, 같은 멸종위기 1급 동물이자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매가 살고 있다. 또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황조롱이와, 멸종위기 2급 동물이자 천연기념물 제326호인 검은머리물떼새가 산다. ‘천연기념물의 보고’ 굴업도씨제이 “보호할 동식물 없다”며
통째 사들여 골프장 밀어붙여 다른 위락시설과는 달리 골프장 건설은 굴업도의 산봉우리들을 떨어내야만 가능하다. 골프장은 원래 자연 야초들이 자랄 수 없도록 0.3∼1. 정도의 표토를 모두 벗겨내고 골프장 잔디에 유리한 모래흙을 새로 깔아 조성하는데 인위적으로 조성된 잔디만을 잘 키우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매일 주다시피 한다. 18홀 골프장 규모일 때의 농약 사용 실태에 비추어, 매일 소방차 한대 분의 농약물이 굴업도의 떨어져 나간 산봉우리들에 살포될 것이다. 170만㎡(약 52만평)에 불과한 좁은 섬에 농약과 화학비료가 살포되면 자연 정화는 꿈도 꾸지 못한다. 굴업도 자체와 주변 바다 생태계는 파괴될 것이 뻔하다. 그러면 씨제이가 없다고 말한 보호가치 높은 동물들은 사슴 무리들과 같이 슬피 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굴업도는 2개의 반월형 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라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능선부를 2 정도 깎아서 떨어내야 한다고 한다. 떨어져 나간 산 위에서 슬피 울 사람은 누구인가? 굴업도 주민일까? 감옥까지 가면서 굴업도 핵폐기장을 막아낸 사람들일까? 굴업도를 거쳐간 수많은 국민들일까? ‘푸른 넓은 바다 굴업도 안고 포근히 감싸준 맑은 물결에 앞마을 뒷마을 고운 모래밭 낟알모래 쓸어 모아 모래밭 되듯 배우자 힘차게 파도를 타고’ 하며 교가를 부르던 굴업초등학교 동창생들일까? 우리 국민이라면 유서 깊은 섬 굴업도가 보존되도록 하는 일에 모두 나서야 하겠다. 이승기/한국녹색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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