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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27 18:33 수정 : 2007.09.27 18:33

왜냐면

2003년 8월, 아이들이 처참하게 죽는 영화 두 편이 개봉됐다. 〈바람난 가족〉에서는 원한 관계로 아이를 납치해 공사장 건물에서 내던져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4인용 식탁〉은 한술 더 떴다. 어린아이가 트럭에 깔려 머리가 짓이겨지고, 엄마가 갓난아기를 아파트 발코니 밖으로 던진다. 막가는 영화들이고, 잔혹함의 극치다. 가슴이 떨리고 헛구역질이 났다.

영화가 나온 직후, 어린 세 자녀를 아파트에서 던져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비정한 30대 엄마가 실제로 있었다. 이쯤 되면 영화가 ‘허구와 가상의 세계’라고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 어린이 살해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직접 묘사하지 않는 금기사항인데, 한국 영화가 감히(!) 깼고 버젓이 상영되었다.

아이들 향한 엽기적이고 극단적 폭력
학교폭력에 참고하라는 건가
집단적 관음증에 빠지라는 건가
스토리 전개상 필요하더라도
아이와 관련된 장면은 신중해야

2007년 9월, 〈에스비에스〉 대하사극 ‘왕과 나’는 내시의 세계를 새롭게 조명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민망한 장면이 많다. 11일 방영된 어린 내시를 뽑는 ‘소환 시험’에서 고자 확인 장면이 나왔다. 뒷모습이지만 아랫도리가 그대로 노출됐다. 여자아이들도 많은 데서 창피를 무릅쓰고 바지를 내렸고, 검사하던 연기자도 민망했다고 한다. 전국의 시청자가 아이들의 토실한 엉덩이를 보면서 집단 관음증에 빠지라는 친절한 ‘배려’였을까? 임금을 목숨 바쳐 보필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장면은 더 심했다. 진흙밭에 나뒹구는 아이들을 사정없이 후려패고, 물독에 집어넣어 백을 셀 때까지 숨을 참게 하며, 거꾸로 매단 채 얼굴에 모래를 끼얹고 물을 들이부었다. 매와 물고문에다, 악독한 고춧가루고문이 연상되었다. 15세 등급이지만 가족들과 보기에는 너무 섬뜩했다. 극중의 어린 임금도 얼굴을 찡그리며 “너무 가혹하지 않으냐. 그만 멈추라”고 했다. 17일은 어린 내시가 곤장을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얼굴에 오줌을 갈기는 장면도 나왔다. 가뜩이나 학교폭력이 문제인데 행여 흉내라도 낼까 걱정이다.

금기 도전자들의 깊은(?)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엽기와 극단성을 이용하려는 의도는 바로 읽힌다. 제작자들의 예술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패륜’에 전율한다. 어린이 살해나 학대 장면을 여과 없이 노출시키는 영화와 드라마는 폭력성에 물든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보는 사람들에게 환멸과 거부감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 보호 및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더 큰 윤리적 문제를 낳는다. 아이들을 해치거나 함부로 다루는 게 별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준다. 문명국가는 미성년자를 육체적 폭력과 정신적 학대 같은 나쁜 환경으로부터 각별히 보호한다. 청소년보호법도 유해 행위를 금지하고, 매체물의 등급을 구분해 관람과 이용을 제한하며, 저속한 언어와 대사까지도 심의한다. 아역 배우들이 연기 중 안전이나 인권 침해를 받는 문제가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스토리 전개상 꼭 필요하더라도 아이들과 관계된 장면은 그들에게 미칠 영향을 곰곰이 생각해서 제작해야 한다. 반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인 저질 영화나 드라마가 또다시 나온다면, 내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관람 거부 운동’을 벌일 것이다. (덧붙임: 아이들 죽이는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음.)


김장중 교육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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