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나는 지금 대학교수 월급에서 건강보험료로 매월 16만원 정도 부담한다. 소속 대학에서 내 몫으로 매월 16만원을 더 보태서 낸다. 아내는 별도의 소득이 있어서 건강보험료를 매월 19만원 정도 부담한다. 1년으로 계산하면 우리 가족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는 600만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이렇게 보험료를 부담한 지 꼭 30년이 되었다. 1977년 건강보험제도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 30년 동안 우리 가족은 다행히 큰 병치레를 한 적이 없었다. 나나 아내는 한창 일할 때였고, 두 아이들은 한창 성장할 때였기 때문이다. 아내가 출산으로 두 번, 노모가 병환으로 몇 번, 내가 가벼운 교통사고로 며칠 입원한 것 이외 가족이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다. 겨울철 감기, 혈압주의 등의 이유로 병원 외래나 약국의 신세를 진 적이 있지만 큰 의료비를 쓴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하게 계산은 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30년간 부담한 보험료보다 건강보험의 보험급여비로 받은 것은 훨씬 적으리라고 본다.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 과거를 회고해 보고 보험료를 많이 부담했는데 보험혜택은 그만큼 받지 못했다는 억울한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 미래를 생각해보면 살다가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이제까지 부담한 보험료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든든하다. 건강보험은 이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제도이며 이 원리에 따라 국민의 건강을 보장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연대성의 원리가 그 기초이다. 전체 사회공동체 속에서 부담 능력이 있을 때 부담하고 아플 때 도움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이제 30년이 되었다. 이 제도가 없을 때에는 아파도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병원비 없어 쫓겨나 …’하는 신문기사가 매일 사회면에 등장하였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러한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거의 모든 국민이 아프면 병원에 쉽게 가서 치료를 받는 시대가 되었다. 국민의 건강 수준도 많이 좋아졌다. 부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부담하고 아픈 사람들이 급여혜택을 받는 사회연대성 원리에 기초한 건강보험 덕분이다. 보험료 부담률 소득의 4.8%선진국 8~14%보다 훨씬 낮아
보장수준은 더 떨어질 수밖에
‘적정부담 적정급여’ 원칙
사회연대성 원리 실현 국민동의를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건강보험은 ‘저 부담, 저 급여 체계’로 운영하여 왔다. 제도 초창기에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책 때문에 그렇게 출발하였고, 그 이후에도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체계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현재 보험료 부담수준은 평균 소득의 4.8%이다. 선진국의 경우 평균 소득의 8%내지 14%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1/2~1/3 수준이다. 보험료 부담수준이 낮으니 혜택을 받는 급여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의 급여율이 60% 정도이다. 선진국의 80% 수준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이 문제를 지금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급여율을 높여 보장성 수준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높은 수준의 본인 부담률을 낮추고, 특히 큰 돈이 드는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이처럼 보장성 수준을 개선하려면 결국 보험료 부담을 높여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혜택을 받는 것은 국민들이 좋아하지만 부담을 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으로 건강욕구 증대, 노인인구 증가, 신 의료기술 발달 등 재정 소요의 증대 요인을 생각해 보면 늘어나는 건강보험의 보험료부담에 대하여 국민적 동의를 얻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어려운 숙제에 대한 정답은 결국 ‘적정부담 적정급여’ 원칙에 대하여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꼭 필요한 만큼의 의료서비스 혜택을 보장하고, 국민 개개인이 부담 능력이 있을 때 부담 능력만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건강보험의 사회연대성 원리를 모든 국민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때 실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이 원리에 따라 앞으로 30년, 아니 영원히 모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사회안전망으로 발전하였으면 한다. 차흥봉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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