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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29 18:55 수정 : 2007.10.29 18:55

왜냐면

로스쿨 취지는 전문성과 보편성 획기적으로 높이려는 것
정략적으로 접근해 국가균형발전의 실천적 도구로서
법률가 집단의 특권을 지방대에 선물로 주려해선 안돼

군인들이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후 전역하여 민간인 행세를 하며 권력을 남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의 총칼 앞에 한없이 나약한 국민들은 고통을 참으며 새벽이 오기만을 간절히 소망하였고 그 꿈은 마침내 실현되었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그 세월이 벌써 어언 15년이다. 그럼에도 과거 군인들이나 했을 법한 대형 비리들과 정치쇼들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 절반의 성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정부 권력을 행사할 것이냐가 아니라, 그러한 정부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정부권력이 국민의 생사가 걸린 공공정책을 한낱 정략으로만 이용하고 특정집단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데 급급하다면, 총칼이 아닐 뿐 그 방식이 독재인 것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가 그 총정원 2000명을 고집하는 것을 보고 지금 국민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참여정부’의 발상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에서 전체적으로 변호사의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학들을 구차한 이익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정부권력인가 말이다.

우리 법제도에 생소한 로스쿨을 굳이 도입하는 취지는 법률서비스의 보편성과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변호사뿐만 아니라 판사도 결코 ‘신기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편적인 법률서비스를 위해서는 로스쿨 총정원은 아예 폐지하거나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정당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무능하거나 불성실한 변호사는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보편성이 충족되면 전문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동일한 시간을 일하고 높은 보수를 받자면 그만큼 어려운 업무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규제와 관련하여 대형 로펌의 법률 서비스를 받아 본 지인은 변호사들이 민법·형법밖에 모른다고 혹평한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우리나라에서 법률전문가는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관련 공무원들을 잘 알고 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다. 전관예우가 여기서 비롯하는 것이다. 현재 변호사의 질이 떨어져서 전문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 수가 부족해서 전문성을 키울 겨를이 없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이 가지는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노무현 정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귀를 틀어막고 무리수를 감행하고 있는데, 로스쿨 문제를 정략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국가 균형발전의 실천적 도구로서 일부 지방대학들에 로스쿨이라는 ‘선물’을 주고자 하는데, 그 ‘선물’이 제값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희귀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법률가 집단의 특권을 해체할 생각은 안 하고 그 특권을 지방에 골고루 나누어 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과 같은 국민생활에 중요한 공공정책이 그런 식으로 처리되어서는 안 된다. 법률 서비스의 보편성, 전문성 제고는 국가 균형발전과 내용적으로 관계가 없다. 기존 법률 서비스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그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당리당략으로 저버리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행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청와대가 지금에라도 생각을 바꾸어 로스쿨 제도를 ‘참여정부’의 이름에 걸맞은 최대 성과로 매듭지어 주기를 바란다.


송시강 홍익대 법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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