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퀄컴의 굴욕을 딛고 와이브로를 세계표준으로 격상시킨우리가 무엇이 두려워 수도권분산에 주저한단 말인가
행정·사법 이전은 폭발 위기 부동산 거품 제거 위한 최적의 행정조처다 이땅엔 ‘진보’에도 수도권과 지방 사이 격차가 존재하는가? 모처럼 서울에 가 성공적인 아프리카 남아공 투자설명회를 참관한 다음날 <한겨레>(<한겨레> 11월1일치 30면)에 실린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위원의 글이 내게 던져준 의문이다. 국토 균형발전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국회와 행정부·청와대, 그리고 대부분의 공공기관을 전국 각지에 흩어 입지시키면 중앙정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거라는 그의 우려는 지극히 ‘수도권적’이다. 과연 그럴까? 비근한 사례로 남아공에는 행정(프레토리아), 입법(케이프타운), 사법(블룸폰테인), 경제(요하네스버그) 수도가 각기 수백, 수천 킬로미터 거리를 두고 산재해도 국정 운영에 큰 문제가 있다고 들어보지 못했다. 남아공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인터넷 통신기술(ICT)을 가진 우리가, ‘퀄컴의 굴욕’을 딛고 와이브로를 세계표준으로 격상시킨 우리가 무엇이 두려워 수도권 분산에 주저한단 말인가. 노무현 정권 초기의 행정수도 이전 시도를 ‘과도한 정치주의’로 규정하는 대목에선 이땅의 진보가 지리멸렬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수도 이전이 폭발 위기에 다다른 서울의 부동산 거품을 제거하는 최적의 행정조처임에도 천민자본주의 물신의 괴력 앞에 수도권 진보논객의 가치판단은 흐려지기 마련인가. 자신 소유의 부동산 가치에 연연하는 진보 지식인과 11월2일 수도권 집중을 규탄하는 상경시위에 참여한 보수 일색 비수도권 자치단체장들 사이에 차이점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50%가 괜한 것이던가. 수도권과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보수와 진보의 구분조차 무의미한 현실이 개탄스러운 것이다. 한편, 부산에서 김포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 다시 투자설명회 장소인 강남 코트라 본사까지 두 시간, 서울의 ‘거대함’을 실감하며 차안에서 읽는 신문엔 온통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지방 배분이 문제다. 대학별 기존 사시 합격률까지 점수화되다 보니 속칭 ‘스카이’대학의 위상은 확고부동할 수밖에 없고, 사법개혁을 위한 변호사 대량 배출마저 수도권에 집중될 상황에서 다시 남아공의 선례는 우리에게 사법수도 분리의 지혜를 깨우쳐 준다. 해괴한 관습법 위헌 결정으로 ‘부동산 불패 신화’를 공고히한 헌법재판소를 이참에 지방으로 이전시켜 봄은 어떠한가. 전원생활을 만끽하는 헌재 재판관들이 자신의 부에 집착하기보다 진정으로 국가발전을 위해 고심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로스쿨을 각기 원주와 조치원 쪽 지방 캠퍼스에 설립하도록 유도하고, 대법원과 헌재, 대검찰청을 원주로 이전하는 것이다. ‘사법수도’ 원주에서 법무교육을 맡게 될 연세대도, 연이어 이전될(?) 행정수도에 인접한 로스쿨을 갖게 되는 고려대도 만족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학벌서열의 정점에 군림하는 서울 법대는 조만간 수적 증가와 탈세 근절로 기대수익이 줄어 인기가 시들할 변호사보다는, 프랑스의 국립행정학교(ENA)를 모델로 정치·경제·사회 분야 최고 엘리트 양성에 나서는 게 더 실리적일 것이다. 행정과 사법기능이 빠져나간 서울은 경제·문화 및 입법 수도로 남아 메갈로폴리스 형태가 견지돼도 광화문에 우 연구위원이 걱정하듯 백층짜리 빌딩이 들어서는 일은 없을 듯하다. 언제든 통일이 되면 입법부도 평양으로 보내 남과 북의 제도적 격차 해소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면 국정감사 대정부 질문 때마다 일손 놓고 국회 복도에 나와 장관 답변 준비에 분주한 공무원들을 보지 않게 되어 또한 소박하게 즐거울 거 아닌가.
한양환/영산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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