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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12 18:39 수정 : 2007.11.12 18:39

왜냐면

의무적 예방주사·우유급식·방사선 촬영…
일상적 건강인권 침해 무수
개인 건강을 강제하는 시대는 지났다

자정이 넘도록 거리를 배회하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국가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던 시절은 벌써 지났다. 땋은 머리 고운 학생들도 아스라이 추억 속 사진에서만 볼 수 있고 차장의 성화 속에 콩나물시루 버스를 떠밀려 타야 했던 시절도 지나 자유로이 승하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느덧 법률적으로도 남성이 여성으로 될 수도 있고, 어머니 성으로 내 이름을 쓸 수 있으며, 초등학생의 일기검사가 인권침해 여부의 문제로 거론되는 ‘인권 제일’ 시절이 되었다. 의도한 신체접촉은 모두 범죄 취급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모든 행동 범주에 인권이 전제되지 않는 주장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건강 인권’의 침해에는 유독 무디다. 보건의료 행위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확한 동의절차 없이 시행됨으로 해서 ‘건강 인권’이 위협받는 일련의 사업들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불소 첨가 수돗물이나 우유 급식과 같이 무심코 마시는 음료에서부터 의무적으로 맞히는 예방주사, 느슨하기 짝이 없는 유해식품 첨가물 허가기준, 병원을 찾으면 예사로이 노출되는 엑스선에도 무감각하긴 마찬가지다. 주사와 항생제들을 억지로 복용하면서도 면역력 증강을 약물과 예방주사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는 왜 없는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 신체에 대해 국가가 선의의 보호 의무자로 생각하게 된 몇 가지 근거는 이렇다. 첫째는, 국민 건강의 이상 유무를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의료 전문가들이란 전제다. 더욱이 눈부신 첨단 의료과학의 객관적인 논리에 맞설 환자는 없거니와 그간의 국민은 그들에게 절대 지지와 신뢰를 보내 왔다. 그러므로 국가는 국민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건강정책의 시행을, 객관적으로 펼칠 수 있는 근거 마련이 이미 정교하게 되어 있는 의료과학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최근 ‘발병후 처방’ 중심의 의료정책에 전환점을 맞고 있다. 21세기 보건의료의 화두는 ‘생활이 곧 의료가 되게 하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국민을 위한 선의의 보호자로 신뢰하던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건강 인권의 침해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어야 한다. 건강을 지킬 자유를 국가의 선의와 도덕적 의무라며 강제하는 시대는 지났다.

국민은 선의로 강제되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능동적 선택을 하는 훈련을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향후 최첨단 의료과학은 이전보다 더 많은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신체의 절대적 자유는 누가 뭐래도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해야 진정한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이지은/한국건강연대 상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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