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수목 뿌리에 고인 뼛가루 묻어나무로 돌아가는 고귀한 의미
매장·납골 대신할 장묘문화로 주목
내년 시행 앞두고 불법 기승
실패한 장묘 되지않도록 노력해야 우리나라의 장사문화는 오랜 전통으로 매장을 선호하지만 매장에 따른 묘지 확보, 경제적 부담, 국토의 훼손 등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전국의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국토의 1%인 998㎢(서울시의 약 1.6배)에 이르며, 또한 해마다 20여만기의 묘지가 새로 생겨나면서 산림훼손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화장하여 납골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고 화장률이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화장 장려를 위해 도입된 납골시설 또한 지나친 석물 치장으로 호화스럽고 대형화되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국토의 훼손 및 미관상 문제 등 분묘와 별 차이가 없거나 더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기존의 매장문화와 납골문화를 대신할 새로운 형태의 장묘문화로 최근 수목장이 좋은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수목과 영생을 함께한다는 자연회귀적 철학적 사고에 기초한 수목장은 1990년대 스위스에서 처음 도입된 이래 독일·일본·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빠른 속도로 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산림정책연구회가 국민 16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2.4%가 수목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응답자도 14.7%나 됐다. 산림청은 산림보전과 심각한 묘지난을 해소하고자 지난 2004년부터 정책연구와 국민의식 조사 등 광범위한 여론 수렴을 거쳐 수목장을 새롭게 도입하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수목장림을 포함한 자연장지의 법적 근거인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올해 5월25일 공포했다. 개정법은 내년 5월26일부터 본격 시행토록 되어 있으며, 이 또한 묘지 설치허가를 받은 구역에서만 조성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일부 장사업체들과 사찰 등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묘지 허가를 받지 않거나 묘지 설치가 제한된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산림을 훼손한 채 수목장림을 조성해 놓고, 인터넷광고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설치비용 또한 현재 산림청에서 추진하는 국공유림 수목장림과 비교할 때 수백만원 차이가 난다. 이에 산림청은 지난 2월과 9월 2회에 걸쳐 사설 수목장림 불법행위 집중단속을 통해 불법 수목장림에 대해서는 불법 산지전용과 입목벌채 위반 등으로 적발해 사법처리한 바 있다. 2008년 5월26일 이전에 설치된 모든 수목장은 불법이며, 이러한 사설 수목장림에 유골을 안치할 경우 해당 시설이 적법한 장사시설로 인정되지 않아 시설 폐지, 이전 명령 등의 조처와 함께, 유족들은 일체의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수목장을 시작한 이는 2004년 9월 고려대 농대 교수였던 김장수 교수로 알려져 있다. 평소 “죽어서 나무로 돌아가겠다”고 한 고인의 뜻에 따라 고려대 농대 연습림 안에 있는 참나무 밑에 작은 나무상자에 고인의 유골을 넣고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작은 푯말 하나를 달아 놓았을 뿐, 봉분도 묘비도 없이 다시 흙으로 덮은 것이 전부다. 이처럼 수목장은 일반 산림지역에서 생장하고 있는 수목의 뿌리 주위에 골분을 묻어 줌으로써 고인이 나무와 함께 상생한다는 자연회귀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 ‘자연’이라는 공간으로 인간이 ‘회귀’한다는 시간적 의미를 내포한 철학적 배경에서 비롯한 만큼, 환경친화적 장묘문화인 동시에 고인을 추모하는 대상이 나무라는 생명체로 승화되는 고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칭 그대로 나무와 함께 편안히 영면하는 것이다. 산림 파괴나 자연경관 훼손도 없이 숲속에 살아 있는 생명체들과 하나가 되는 수목장은 자연장의 취지를 가장 잘 구현하면서도, 기존의 매장이나 납골묘 등의 인공적 시설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호화묘·대형화·자기과시 등의 겉치레에서 벗어나, 추모목을 통해 가장 자연적이며 순수하게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국민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 속에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수목장의 시행을 반년 남짓 앞둔 지금, 수목장의 취지와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접근해 수목장이 또다른 ‘실패한 장묘문화’로 변질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기호/산림기술사·고양시산림조합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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