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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19 18:14 수정 : 2007.11.19 18:14

왜냐면

비정규직 차별·변호사 정원제는
‘학력차별 이데올로기’의 극단
조금 뛰어난 사람만 밀어주는한
학부모·학생의 고난의 행군은 계속된다

외고 입시문제 유출과 관련된 학원 쪽 학생들의 합격을 취소한 것은 성급하다. 시험이 불공정하게 치러진 책임을 학생들에게 묻고 있다. 한 학생이 길가에 우연히 유출된 시험지를 주웠다고 하자. 시험지가 유출된 책임을 그 학생에게 물어 합격을 취소할 수 없다. 이번 피해 학생들에게 버스 안에서 시험문제를 나누어 줄 때 정확히 어떻게 나누어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 사전 유출된 시험문제가 있다”고 설명하고 “보고 싶은 사람만 가져가라”고 하거나, 버스에 갇혀 있던 학생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고 눈앞에 문제지를 들이대는 형식이었다면, 이 학생들을 길거리에서 주운 문제지를 모르고 본 학생과 구별할 수 없다.

이번 사태의 해결책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학력차별’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어야 찾을 수 있다. ‘학력차별’ 이데올로기란 두 사람 사이의 학력차를 무리하게 과장하여 조금이라도 뛰어난 사람은 국가가 적극 지원해 주고 조금이라도 부족한 사람은 국가가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뛰어난 사람을 위해 불합리하게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믿음이다.

현정부는 서민의 정부를 자처하고 양극화에 대한 싸움을 선언한 정부였다. 그러나, 양극화의 뿌리에는 입사 과정을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비정규직 차별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왜곡된 ‘학력차별’이 자리잡고 있음을 외면하고 있으며, 그 모습은 최근의 로스쿨 총정원 결정에서도 나타났다.

변호사 정원제는 그동안‘학력차별’의 극단을 보여줬다. 오늘날 전국에서 사법시험 합격의 의미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은 합격자 발표 후에 각 대학과 마을 어귀에 걸리는 펼침막들이 말해준다. 1, 2차로 나누어진 단 1회의 시험성적으로 사람들의 사회적 경제적 신분을 종신적으로 결정하는 변호사 정원제는, ‘본사’의 정규 입사시험 합격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은퇴 때까지 차별하는 비정규직 차별과 이념을 같이하고 있다. 더욱이 변호사들이 제공하는 법률서비스는 법치주의 사회에서 의식주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고려하면 국민 전체를 희생하여 변호사들의 수입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정원제다. 그런데, 현정부는 변호사 정원제의 공식적인 폐지를 앞둔 현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총정원을 기존의 사법시험 정원을 바탕으로 극도로 낮게 설정하여 실질적으로는 정원제를 계속 유지하였다. ‘학력차별’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교육부는 중등교육 입시열기의 원흉인 대학교들의 서열을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주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로스쿨 총정원을 이렇게 낮춰 놓은 이상 이제 대학교들의 서열은 로스쿨 정원이 주도할 것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으로 나가는 통로를 교육부가 틀어쥐고 정원제 시험을 통해 ‘학력차별’을 하고 있는 한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학부모들의 ‘고난의 행군’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장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임을 역대 정권 중 어느 한 정권은 인식해 주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학력차별’의 불합리성을 깨닫는다면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책도 금방 나올 수 있다. 순진한 피해 학생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고 교육부의 지원으로 김포외고 모집 총정원을 늘려서라도 그 학생들 수만큼 다시 뽑는 것이다. 외고 입학과 같은 ‘축복’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주는 것은 ‘학력차별’ 전통을 훼손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박경신/고려대 법과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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