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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9 19:04 수정 : 2007.11.29 19:04

왜냐면

현지공장 노동자를 연수 명목 들여와
고되게 시키고 최저임금도 안주며 착취
이탈 막으려 여권 빼앗는 인권유린 예사
‘인권악법’ 입법예고 개탄스럽다

지난 11월8일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겠다며 입법예고를 하였다. 개정안 내용을 보면, 현재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는 해외투자기업 연수생 제도(이하 ‘해투연수생 제도’)를 법률로 명문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오랫동안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지적을 받아온 인권유린 제도이기에 법률로 제정할 것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

해투연수생 제도는 해외에 현지 법인을 둔 국내 모기업이 현지 공장의 노동자를 들여와 한국에서 기술연수를 명목으로 일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들 연수생들은 하루 8시간 일을 해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며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도 산재보상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이들의 신분이 ‘노동자’가 아니라 연수생이라는 ‘학생’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경남의 한 대기업 자동차공장의 경우 150명의 우즈베키스탄인들이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있지만 이들이 한 달 일하고 받는 기본급은 최저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30여만원 가량이다.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산업연수생 제도가 최저임금제와 산재보상 제도를 적용받으면서도 말썽을 빚는 터인데,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해투연수생 제도는 최저임금과 산재보상마저 적용받지 않으며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해투연수생들이 외국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며, 이들은 한국에서 기술연수만 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해투연수생들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외국인이 국내 사업장에서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면 법적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국내법상 노동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해투연수생들이 산업현장에서 생산활동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현지 기업의 노동자’ 운운하는 정부 쪽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한국 땅에서 일한다면 한국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가 해투연수생 제도를 가리켜 ‘순수한 기술연수 제도’라고 하지만 이마저도 근거가 없다. 기술연수를 하려면 이론교육과 실습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이들 연수생들에게는 온종일 기계에 매달려야 하는 고된 노동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와 익히게 되는 생산기술도 단순 반복 작업이 대부분이어서 2주일 정도면 충분히 익힐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단순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1년씩이나 ‘연수기간’을 부여하고 있다. 대기업들에 초저임금의 외국 인력을 마음껏 활용하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 해투연수생들이 현행법상 현지 공장의 직원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송출회사 등을 통해 인력을 모집한 뒤 현지 공장의 직원으로 거짓서류를 꾸민 뒤 한국에 데려와 일을 시키는 것이다. 2005년 4월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간한 ‘해외투자기업 연수생 노동시장 실태분석’을 보면 조사대상의 55%가 현지 공장의 직원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의 기업들이 노동력 착취를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67.8%의 업체들은 이탈방지 목적으로 연수생의 통장과 여권을 강제로 빼앗아 보관하고 있는 등 인권유린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가 거짓과 탈법, 노동력 착취로 가득 차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지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해투연수생 제도를 법률로 명문화하겠다는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을 부채질하는 일이다. 특히 정부가 비인간적인 제도를 통해 대기업에 막대한 부당이익과 특혜를 주는 것은 과거 국가권력이 행했던 정경유착의 폐해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참여정부가 내세운 인권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는 증좌다.


정부가 과거의 잘못된 정책들을 이제라도 바로잡고자 한다면, 끝없는 비난을 받아온 ‘연수 없는’ 연수제도를 즉각 폐지하고 모든 해투연수생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전면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당한 노동착취에 대하여 실태조사를 하고 빼앗긴 권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반인권적 제도를 운영해 오며 관리조차 제대로 못 해온 법무부는 책임 있는 자세로 이 제도를 폐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1960년대 가난한 한국인들을 데려가 일하게 했던 독일 사회는 이들에게 자국민과 차별 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했다. 타국인의 인권이 무시당하면 오래지 않아 자국민들의 인권마저 위태로워질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투연수생 제도 폐지는 한국 사회에 놓인 차별과 노동착취의 잔재가 사라지고 합리적인 인권정책이 뿌리내리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터이다.

우삼열/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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