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언론 ‘가해자 무한책임’ 보도 배제수조원 배상한 국제사례도 도외시
세계 유례없는 국립공원급 사고
상한선 정해놓고 협상해선 안돼 2002년 스페인에서 있었던 프레스티지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비비시>(BBC) 방송의 11월20일치 보도를 보자. “국제해사기구는 (방제) 비용과 보상청구액이 국제유류오염손해배상기금(IOPC)과 보험사의 배상한도를 넘을 경우, 피해보상 청구인들은 초과액수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언론 보도는 일률적으로 아무런 설명 없이 국제유류보상기금과 선박보험사들의 총 배상한도가 3천억원이며 그 이상의 피해보상은 불가능하거나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고 보도해 왔다. 크레인 예인선단 쪽인 삼성중공업 및 삼성물산과 유조선 선주회사인 허베이 스피리트사는 각각 상법 제746조와 유류오염배상보장법 제6조에 따라 “선박 소유자 자신의 …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행위로 말미암은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제한이 배제된다. 곧, 국제유류오염손해배상기금과 보험회사의 배상한도를 넘어가는 피해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또, 현대오일뱅크는 실질적으로 운항을 통제했다면 책임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법적인 가능성을 아예 국민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다. 총 5조원대의 배상 및 방제가 이뤄졌던 1989년 알래스카의 액손 발데즈호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났던 미국에서도 한국과 같은 선주책임 제한법은 있었다. 하지만, 법원이 음주경력이 있는 선장과 무능한 선원을 고용한 선주의 책임을 물어 책임제한을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선장은 형사처벌도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 알래스카건에 적용되는 기준과는 조금 달라도 어차피 “손해 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행위”는 국제협정에서 따온 문구로서 그 의미는 각국의 법원이 판단해야 할 몫이며 “중과실” 정도라는 해석 외에는 국제적으로 구속력 있는 정의나 판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의 기름유출 사고 때 대부분의 피해지역 법원들은 피해자인 자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과실”을 매우 폭넓게 해석해 왔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와 같은 보도에 영향을 받아 3천억원에 맞추기 위해 피해집계를 보수적으로 하거나 선박회사들의 중과실 여부(단순히 선장들의 과실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무한책임이 중요한 이유는 국립공원급의 개펄과 청정구역을 유조선 사고의 기름이 덮친 경우는 세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초유의 사태에 대비해 이미 국제사회는 2005년 3월에 배상한도를 1조원 이상으로 높이는 의정서를 체결해 2006년 말까지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네덜란드·리투아니아·크로아티아 등의 19개국이 가입했지만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이 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았다. 우리만 3천억원을 한도로 정하고 논의를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피해지역의 1년 어업소득만 해도 수천억원이 넘고 관광업 피해는 이보다 크며, 그런 규모의 피해가 여러 해 지속될 것이다. 또, 정부도 방제비용과 환경복구 비용을 모두 보상받아 이 지역의 환경복구에 투입해야 한다. 3천억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알래스카 사건에서 방제 및 환경복구비용으로 정유회사가 국가에 지급한 금액만 1조원이 넘는다. 지금 당장 몇천만원어치 입증자료 모으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피해주민들에게 3천억원, 1조원 모두 꿈같은 얘기일 수 있으나 적어도 상한선을 미리 정해놓고 피해보상 협상을 할 수는 없다.
박경신/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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