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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7 18:53 수정 : 2007.12.27 18:53

왜냐면

본업보다 부업을 강요하고
근평제와 승진경쟁은
아이와 밀착한 교사를 홀대한다
이런 병폐 방치한 현 평가제도는
무능교사 숨겨주는 그늘

교사들이 무능하고 나태하다고 야단들이다. 너도나도 교사들에게 경쟁의 선착순 달리기를 시키려 한다. 이미 근무평정제와 성과급제가 있는데도, 올해부터는 다면평가란 틀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그 앞에 일렬종대로 줄서라 명령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지, 막상 교실에 들어와서는 왜 맥이 다 빠져 버리는지 정곡을 찌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건 자칭 교육전문가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도 사실은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수박 속을 알면서도 짐짓 눈을 감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왜 교사들은 늘 강의와 생활지도에 전력투구하지 않는가? 왜 그들의 눈빛에서는 의욕이 사라지고 있는가? 그 까닭은 이렇다.

첫째, 우리의 교육제도와 관행은 오랫동안 교사들에게 ‘본업’보다 ‘부업’을 강요해 왔다. 그 부업의 대표적 사례가 교사들 손으로 처리되는 엄청난 양의 공문들이다. 공문서 처리는 주로 수업 진행을 맡지 않는 직원들, 예컨대 교감, 교장, 행정실 등에서 도맡아야 함에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걸핏하면 수업은 교사의 의무이자 권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막상 교사들이 공문서 수발에 일과의 대부분을 소진하는 현실에는 큰 관심이 없다. 아니 은근히 수업 경시 풍조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공문만 매만지던 교사들이 새 학기마다 이렇게 대거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단 말인가?

둘째, 설령 ‘본업’에 충실하더라도 그런 교사는 곧 교육계의 소수자로 전락하게 된다. 수십 년 존속돼 온 근무평정제는 수업 잘하고 아이들과 밀착해 생활하는 양심적인 교사들에게 상위 점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좀 고뇌가 깊어 보인다 싶은 교사를 아이들이 먼저 위로한다.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 될 수 없지요?” 그뿐인가. 수업을 전담하는 평교사들은 학교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대부분 소외되기 십상이다. 뭘 좀 잘해 보려고 수십 명의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건의해도 학교장의 말 한마디로 묵살될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초·중등학교 교무실 풍경이다.

셋째, 무엇보다 교사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눈독을 들이도록 제도가 유혹하고 있다. 잿밥이란 당연히 평교사 생활 떨쳐 버리기, 곧 승진을 말한다. 평교사와 교장의 차이는 업무량, 권한, 처우, 사회적인 인식 면에서 천양지차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점수 부여 승진제는 특히 공립학교 운영의 거대한 블랙홀인 동시에 강력한 교원 통치 기제로 작용한다. 수업연구대회 참가도, 시범학교 유치도, 대학원 진학도, 연구논문 작성도, 학급 담임보다 업무 부장을 선호하는 것도, 교무실의 수직적 권위주의도 다 그 이면에는 점수 부여 승진제가 놓여 있다. 오죽하면 “아이들과 멀어져야 승진이 가까워진다”는 말이 다 나왔겠는가?

결국 핵심은, 교무실 문화 자체를 어떻게 수업친화적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느냐다. 학교마다 교사 독서모임이 조직되고, 자율 세미나가 열리고, 교재를 공동으로 제작하고, 토론을 즐기는 교사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서 그들이 기를 펴고 교무실을 누비고 다녀야 한다. 교직원 회의에서 주요 발언권자도 공문을 움켜쥔 교사가 아니라 수업하는 교사들이어야 마땅하다. 교감, 교장이 1주일에 단 한 시간이라도 정기적으로 수업에 참가한다면 금상첨화다. 장학사는 더는 ‘공문 독촉사’라는 조롱을 듣지 않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현재의 병폐를 방치한 채 이미 있는 세 종류의 교원평가 위에 또다시 열을 더한다 해도 그건 무능 교사를 숨겨주는 ‘합법적인 그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박성대 경남 밀양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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