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1.17 17:49 수정 : 2008.01.17 17:49

왜냐면

보수언론의 혈세 운운은 사실이 아니다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이 재원인데
이는 구조조정 희생이 낳은 이익이다
벼랑에 몰린 삶을 구제해주는 것은
사회통합 차원에서도 정당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신용회복 지원 공약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720만명에 이르는 금융 소외자들에 대한 채무 재조정과 연체기록 삭제, 그리고 소액대출기관 설립과 관련한 새 정부의 정책 구상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고 또 전체 금융시장의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한 보수언론은 국민혈세로 빚을 탕감시켜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금융 소외자들을 위한 재정 지출을 강하게 부정한다. 세금 또는 공적자금을 운운하는 등의 자극적이고도 선동적인 문구를 통해 신용회복 지원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사실 이러한 보수언론의 ‘세금지출론’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신용회복 지원정책의 주요 재원은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이다. 여기서의 ‘잉여금’이란 재정지출이나 공적자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 국내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정부가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금융공기업인 자산관리공사에 설치한 부실채권정리기금이라고 하는 공적자금이 낳은 이득이다. 즉 공기업이 부실채권 정리 업무를 통해 벌어들인 이윤인 셈이다. 보수언론은 이런 잉여금을 두고 ‘국민의 혈세’ 운운하면서 마치 이번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위해 또 방만한 재정운용을 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데 부실채권정리기금이 잉여금을 낳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구조조정의 희생자들이 있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부실채권 잉여금은 현재 약 7조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는 부실채권정리기금 총액인 21조6천억원 이외에 정부의 리스크 부담, 국가 인프라로서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관리 성과, 그리고 외환위기 사태 이후 국민경제의 전반적 정상화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직, 부도 등 구조조정에 따른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총체적인 국가 위기적 국면에서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자산관리공사가 위기적 국면에서 싼값에 부실채권을 매수한 뒤 경제가 좋아져서 채권가치가 높아졌을 때 매각해서 벌어들인 것이 바로 이 잉여금이다.

그렇다면 이 잉여금을 외환위기와 그 구조조정의 희생자들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국가의 ‘실패’를 다름아닌 국가가 ‘책임’짐으로써 국가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 귀결이지 않은가. 외환위기 이후 심각해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간의 양극화, 또 제도금융권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의 피폐화된 삶, 이러한 사회적 위기를 수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겠다는 취지 앞에 과연 ‘도덕적 해이론’과 ‘금융질서교란론’이 설 여지가 있는가?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들에게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구성원들의 정책·제도, 나아가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낳고, 그 결과 ‘이데올로기의 빈곤’을 초래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사례와도 같이, 국민들의 심리적 공백을 주변국에 대한 노골적인 발언과 극우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채우려고 하는 인기 영합적인 포퓰리즘적 정치그룹이 등장하게 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과연 어떤 길로 가게 될 것인가? 사회가 분열되고 또 국가마저 파국적인 방향으로 걸어가 우리 모두를 자멸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나 금융질서 교란보다도 더욱 무서운 결과이지 않을까? 새 정부의 신용회복 지원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반대 여론에 밀려 그 규모나 절차가 왜소화되지 않길 바란다.

양준호/인천대 교수·경제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