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위기상황 생계유지가 곤란한 자에게지급해야할 돈이 행정편의주의에 묶여
40일이 지나도록 지원되지 않다니
주민들 죽고난 다음 지급할 참인가 태안군에서 기름유출 사고 피해를 입은 어민이 세 명이나 자살했다. 한 사람은 지난 10일 굴 양식장을 경영하다 기름 유출 사고로 터전을 잃은 것을 비관해 제초제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영권씨고, 또 한 사람은 40여년 전부터 바지락 양식장 등에서 맨손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생업을 잃자 지난 16일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한 김용진 노인이고, 또 한 사람은 태안 읍내 수산물 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다 가게에 손님이 끊긴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분신했다가 19일 끝내 숨진 지창환씨다. 엄동설한에 설까지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주민들이 이렇게 자살을 하고 있다. 하루속히 돈을 풀어서 제3, 제4의 자살을 막아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미 배정된 300억원의 특별생계지원금조차 사고발생 40일이 되도록 전혀 집행되지 않고 있다. 각 당에서는 특별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나, 2월 임시국회 때나 돼야 통과될 예정이다. 태안군은 어촌계를 통해 기름제거 작업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남자 7만원, 여자 6만원의 일당을 지급하기로 하고 일을 시켰으나 일당을 지급하지 않고 미루고 있다. 김 노인도 며칠 동안 일은 했으나 일당을 받지 못해 생계가 대단히 곤란했다고 한다. 누가 이자놀이를 하는 것은 아닐텐데, 왜 배정된 예산마저도, 하루 벌어서 하루 입에 풀칠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한국에는 엄연히 기초생활보장제도, 긴급복지지원제도, 경로연금 등 절박한 빈민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복지제도가 있다. 김 노인은 한 달이 넘도록 소득이 끊긴 상황에 처하자 담당복지사를 찾아가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신청을 했다고 한다. 엄동설한에 당장 생계가 다급한, 장애인 부인을 돌보는 노인이 사정을 호소했으나, 다른 곳도 아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태안군의 담당복지사는 별로 희망적인 말은 해주지 않았다. 조사를 한 후 자격요건에 맞으면 연락해 주겠다고 말하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김 노인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신청 후 3일째 되는 날 자살을 했다. 왜 김 노인에게 긴급복지지원을 해주지 않았냐고 추궁을 하자 근흥면과 태안군의 담당복지사는 김 노인이 기초생활보장 신청을 한 것이지 긴급복지지원 신청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한 태안군, 소원면, 근흥면의 담당자들은 재난으로 발생된 피해에 대해서는 재난구호 보상비로 지원이 되는 것이지 긴급복지지원 예산으로 지원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을 못했다고 발뺌을 했다. 특별재난지역이란, 당연히 해주어야 할 긴급복지지원이나 기초생활보장을 해주지 않고 재난구호 보상비로 미루는 지역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공무원들이며, 재난구호 보상비는 당사자들이 굶어 죽거나 자살해 죽고 난 다음에나 지급되는 것인 모양이다. 긴급복지지원법에는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자’에게 긴급지원을 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런데 재난구호 보상비가 40일이 지나도록 단 한푼도 지원되지 않는 상황 아래에서 긴급복지지원마저도 재난구호에 미루며 작동하지 않으면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실제로 긴급복지지원제도가 이렇게 경직된 채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런 제도가 존재하는지, 자신들이 수급권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못하고, 제2의 자살자 김용진씨, 제3의 자살자 지창환씨가 생긴 것이 아닌가? 이름만 거창하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 다가 아니다. 이름에 버금가는 재난대책이 신속하게 시행돼야 한다. 태안군은 재난구호비, 특별생계지원금, 긴급복지지원금 등 어느 예산 항목이나 민간지원 성금을 가리지 말고 지체 없이 긴급복지지원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생계가 곤란하면 국번 없이 129에 전화를 걸어서 긴급지원 신청을 하라고 홍보하고, 생계가 곤란한 주민들이 누구인가를 찾아 나서서 긴급복지지원 신청을 적극적으로 받는 ‘찾아가는 복지’를 시행하는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각 언론기관들 또한 자원봉자사들의 모습만 취재할 것이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의 실상과 복지행정의 현장을 모니터해 필요한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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