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대운하·통일부 폐지·금산분리 완화…밀어붙이면 안될 게 없다는 식이지만
모두 국회 입법과정 거쳐야 할일
섣부른 판단 국정 혼선만 초래한다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새 정부가 추진할 많은 정책과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운하 조기 착공,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 국민세금을 동원한 신용불량자 구제, 정부조직 개편 같은 것들이다. 정책방향이 타당하냐는 것도 따져볼 문제이지만, 하나같이 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들어야 추진할 수 있다. 법을 만들고 개정하는 일은 국회의 권한이다. 그런데 인수위에서는 이미 다 결정된 것처럼 밀어붙이겠다는 자세다. 정부 부처 공무원들도 인수위 눈치만 보면서 ‘코드’를 맞추고 있다. ‘정권 인수위’가 아니라 ‘인수위 정권’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나는 1997년과 2002년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출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97년 말∼98년 초 김대중 정부의 인수위는 두 가지 특수한 상황에서 출범했다. 하나는 선거를 통한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이고, 다른 하나는 외환위기라는 국난이었다. 특히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 정부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는 물론 각국 정부에서 김대중 당선인만 바라보는 상황이 됐다. 당시 미국에서 경제학 교수를 하고 있던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새 정부 인사들과 정부 정책결정자들을 도우면서 국제통화기금 지원, 외채 만기연장, 개혁프로그램 추진 등에 조력했다. 정권 인수와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첫째, ‘인사가 만사’이니 인수위는 차기 정부를 이끌어 갈 진용을 준비하는 일에 집중할 것과, 둘째, 당선자는 일상적 국정운영에 끌려들어가지 말고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두어 가지 꼭 챙겨야 할 일을 구상해 취임 6개월 안에 밀어붙일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두 가지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인수위는 결국 정부 기능을 사실상 대신하게 되었고, 김대중 당선인도 차분히 국정을 준비하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의 인수위는 국정운영을 챙길 만한 경륜이 부족한 아마추어들이 자기도취에 빠져 사실상 ‘권력의 핵’으로 정권 출범 전부터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했고, 이는 집권 이후 국가전략의 부재와 국정 혼선의 원인이 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도 이런 불행한 선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밀어붙이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대운하를 여론수렴도 없이 당장 착공하겠다고 하고, 한반도 평화의 큰 흐름을 무시한 채 통일부를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또 정부 관료들을 불러 호통을 치는 인수위,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를 무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는 인수위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섣부른 판단과 정책결정으로 국정 혼선이 초래되는 것이고, 이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인수위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챙기고 있는데, 과거 김대중 당선인에게 건넸던 조언을 똑같이 하고자 한다. 새 정부 출범 때까지만이라도 국정 구상에 집중하라고. ‘권력의 단맛’에 중독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폐해는 넓고도 깊다. 인수위가 원활한 정권 인수와 차기 정부 운영을 준비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때 새 정부의 출범을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는 국민의 걱정과 우려도 줄어들 것이다. 채수찬/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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