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학비 없어 수학여행 못가는 아이들획일교육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
기존 교육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대학자율 따위는 의미없다
소외층 먼저 감싸는 교육정책을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새 정부 교육정책의 요지는 ‘자율’에 있다. 점진적으로 대학입시를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하여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며,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에게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말도 들리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고교 평준화도 사라질 것 같다. 고교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수능의 외국어 영역 대신 새로운 형태의 영어 시험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기사를 계속해서 접하면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의문점은, 그렇다면 과연 새 정부의 이러한 교육 정책이 실시되었을 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학교’로, 기존 교육 제도에서 떨어져 나온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소위 ‘대안학교’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왕따, 폭력, 학교 부적응, 획일적인 교과 과정에 대한 반감, 교사와의 갈등, 가정환경 문제 등 정말 수없이 많은 이유들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다니던 학교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둬야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학생들의 대다수가 정부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생활보호대상자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학비에 어려움이 많은 가정의 학생들이다. 그러다 보니 한 반에서 거의 절반에 이르는 학생들이 각 지역 자치단체나 교육청으로부터 매 분기마다 학비와 점심식사를 지원받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학생들 중에도 학비가 밀려 학교 다니기 싫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런 학생들에게 대입 자율화, 자사고, 특목고란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필자가 학교에 근무한 지 벌써 8년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다른 학교 학생들 다 가는 수학여행 한번 가본 일이 없다. 10만원이 훌쩍 넘는 수학여행비를 낼 만큼 여유 있는 가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학비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학여행은 호사스러운 일일 뿐이고,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수학여행의 추억이 없다. 새 정부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가난의 대물림을 끊자’라는 말도 자주 들린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고 자신이 배운 것을 사회에 나아가 뜻대로 펼쳐야 한다. 어릴 적 사회시간에 배웠던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부족하므로 인적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 정말 절실하다. 그리고 우리 후배들과 후손들에게서 가난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에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 혹은 소외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먼저 돌보아야 한다. 그들이 마음 놓고 공부해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낼 때, 그 다음에 대입 자율화나 자사고, 특목고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자율성과 특성을 마음껏 살리는 일,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서민 대다수가 겪어온 고통을 생각할 때 지금 시점에서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것은 아마도 먹고 사는 일의 부담을 더는 것이 아닐까? 먹고 사는 걱정을 없애는 데는 교육이 약일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매년 7%대의 경제 성장이나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도 이러한 교육 문제의 해결은 정말 절실하다. 새 정부가 이런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정재환/서울 성지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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