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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8 19:00 수정 : 2008.01.28 19:00

왜냐면

일상생활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언어교육 위해 디자인되는 게 몰입학습
학습자가 그 환경에 빨려들게끔
각각 관심사에 맞는 프로그램 설계해
삶의 긴장감을 푸는 일이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콘코디아 대학은 1961년부터 ‘콘코디아 언어 마을’이라는 외국어 몰입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다. 그 중 1999년 설립된 ‘숲 속의 호수’는 한국어 마을이다. 나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그곳에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전담 교사로 일하고 있다. 여름 캠프로 이뤄지는 이곳에는 한국에 막연한 관심을 갖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과 한인계 입양아 등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매년 100명 정도 찾아온다.

몰입식 교육법으로 영어권의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매번 뼛속 깊이 박힌 그 무엇은, 한글의 우수성이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어에 대한 자긍심 이전에 몰입학습 자체에 대한 신뢰였다. ‘몰입학습’이란, 목표 언어가 쓰이는 환경에서 그 언어를 배우는 방법을 말하는데, 스펀지를 물 속에 담그면 물을 쫙 빨아들이듯, 목표 언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학습자들은 더 용이하게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몰입학습의 이점을 고려했을 때, 몰입식 영어 교육은 단순하게 “영어로 영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워서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을 기르자”는 취지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몰입학습에 대한 오해를 부추기고, 준비가 안 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불안감만 고취시킬 뿐이다. 그에 앞서 몰입학습에 대한 이해와 몰입학습이 진행돼 온 언어 교육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첫째, 몰입식 언어교육은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언어교육에 옮겨놓은 교육 방법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몰입학습 환경은 일상생활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언어교육을 위해 디자인됐다. 하루 일과를 “일어나세요!”라는 말로 시작하며, 한국의 댄스음악을 틀어 놓고 아침체조를 하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 한국음식을 먹고 나서는 울산이나 부산이나 광주라는 이름을 가진 통나무집에서 한국어 공부도 하고, 도자기도 만들며, 친구들과 팥빙수를 먹는다. 오래 전, 콘코디아 대학의 한 교수는, 독일에서 교환교수 시절, 자기보다 독일어를 더 쉽게 배운 일곱살짜리 딸의 언어학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독일 어린이들과 일상을 같이 했기 때문에 독일어를 쉽게 배울 수 있었다는 별로 놀랍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고는 미국으로 돌아와 콘코디아 언어 마을이라는 획기적인 언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는 사실이 바로 몰입식 외국어 교육의 효용을 증명해 보인다.

둘째, 몰입학습에서는 일상 속에서 외국어를 가르치고, 몰입식 환경으로 빨려 들어온 학습자들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배운다’는 말 자체에는 분명 어폐가 있다. 외국어는 낯선 언어고, 나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발화하는 사람은 낯선 사람이다. 낯선 사람과 낯선 언어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일은 아무래도 뜬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몰입식 외국어 교육을 진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학습자가 좀더 편안하게 외국어 사용 환경에 젖어들 수 있도록 그들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친구와 잡담하기를 좋아하고, 보드 게임에 열광하고, 대중문화에 빠져 들며, 이성에 대한 관심과 정체성 혼란을 겪는 어린 학습자들과 함께 공감하며 그에 맞는 언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몰입식 외국어 교육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본다.

셋째, 몰입학습에서는 학습자들에게 목표의식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말을 배워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몰입학습 환경이 잘 되어 있는 곳이라면 그날 배운 말은 그날 몰입학습 환경 안에서 적재적소로 써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주세요”라는 표현을 배웠다면, 식당에서는 “밥 주세요”, 은행에서는 “오천원 주세요”라는 말을 쓸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몰입학습의 원조 격인 콘코디아 언어 마을의 교육 이념은 ‘지구촌 사회에서 책임감 있는 시민을 육성하자’다. 그를 위해서 앞서 해야 할 일은 삶에 대한 이해다.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을 키우자며 모두에게 영어 강박관념과 삶에 대한 과도한 긴장감을 키우는 것이 몰입학습의 취지가 아니다.


조영미/미국 콘코디아 ‘한국어 마을’ 부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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