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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31 19:08 수정 : 2008.01.31 19:54

왜냐면

지역별 고작 열댓명 뽑는 임용고시에
0.1점차로 떨어지는 교원자격증 소지자들
좋은 스승, 실력있는 선생이 되려
4년간 열심히 공부한 그들을 두고
인력부족 운운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재학생이다. 인수위가 내놓은 차기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영어 이외의 과목에 대한 이른바 ‘몰입 교육’ 문제는 거센 반대 여론에 밀려 꼬리를 내리고 말았으니 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영어 교사가 되기 위해 4년간 국립 사범대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교사로서 분통 터지는 일이 있다. 인수위가 발표한 ‘영어 전담 교사’ 채용 계획이 그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오는 2013년까지 영어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전담교사 2만3천명을 신규채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사가 되기 위한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영어권 국가에 오래 거주했거나 테솔(TESOL) 과정을 이수한 자 등, 교원자격은 없지만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진 자들을 계약직 영어 전담교사로 채용하겠다는 방침인 것이다. 물론,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이들을 대폭 채용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영어수업을 하겠다는 방침은 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인수위의 계획대로 영어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영어 수업 시수를 늘리려면 실력이 우수한 영어교사를 신규로 대폭 채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범대 졸업생이나 교육대학원 이수자에 한정된 교원자격증 소지자들로는 인력이 부족하니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일 것이다.

교사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직업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학생들의 전인적 발전을 돕는 조력자이며, 이는 결코 몇 개월의 연수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영어만 잘 한다고 교사로서 인성이나 자질이 검증되지도 않은 자들을 무더기로 뽑아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이냐 따위의 얘기는 하고 싶은 의욕도 없다. 한 반에 30∼40명이나 되는 학생들 중 과연 몇 명이 영어로 하는 수업을 알아듣고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힘도 없다. 그러기엔 인수위의 ‘의욕’이 너무나 저돌적으로 보여, 비판의 의지마저 상실할 정도다. 다만, 한 해 열댓 명 뽑는 교원임용시험에 몇 천 명이 지원해 떨어지고 몇 년 씩을 재수하는 마당에, 2만3천명이란 숫자가 너무나 꿈같아 보일 따름이다.

인수위는 지난해 12월에 치러진 2008학년도 중등교사 임용 시험의 경쟁률을 알고 있는가? 부산의 경우, 영어과에 19명의 교사를 뽑는데 354명의 지원자가 응시해 15.4의 경쟁률을 보였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은 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에 한해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354명이라는 숫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전국적으로는 몇 천 명이 시험에 응시해 그 중 대다수가 떨어지고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1점, 2점도 아닌 0.1점 혹은 0.01점의 차이로 떨어진 그들은 모두,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4년의 교육을 받았거나 교육대학원을 마친, 교원자격증 소지자들이다.

국립대학교 사범대는 예비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만든 교육기관이 아닌가?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고등학교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여 국립 사범대에 왔다. 수능시험 전국 상위 1∼3%에 드는 인재들을 뽑아 4년 동안 예비교사로서 양성해놓고, 끝도 보이지 않는 ‘임용전쟁터’의 고시생으로 전락시켜 놓은 국가는 이런 ‘말로만 예비교사’인 우리들을 알고는 있는가? 지난 4년간 받았던 예비교사 교육, 설레는 마음으로 임했던 교생 실습, 그 모든 것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개월 짜리 과정을 수료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니, 허탈할 뿐이다.

사범대 졸업생들에게만 교직을 허용하라는 배타적인 주장이 결코 아니다. 특권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다만, 영어교육 개혁을 위해 부족한 인력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인수위가, 과연 누구보다 ‘준비된’ 예비교사인 사범대 졸업생들이 한 해에 몇 천 명씩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알고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4년 동안, ‘교육’은 그 어떤 분야보다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라고 배웠으며,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해, 또 누구보다 실력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왔다. 그래서일까. 사범대 졸업생은 교사가 되지 못하면 일반 기업체에의 취직 기회도 거의 요원하다. 오직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받은 사범대 졸업생들을, 기업들이 뽑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로 하는 영어 수업도 좋고(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앞서지만), 교직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을 잘 가려내기만 한다면 영어 전담 교사 채용도 좋다. 단, 국가가 양성해 놓은 수 천 명 예비교사들을 우선 채용한 뒤에, 뽑아도 뽑으란 말이다. 실력이 없어도 사범대 교육대 졸업생이라고 무조건 뽑으라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올해부터 3차로 바뀔 중등교원임용시험은, 영어과의 경우 전공 전반에 관한 지식(1차), 영어 논술 실력(2차), 영어로 수업을 할 수 있는 실제 수업 능력(3차) 등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게 된다. 그를 통해 교원자격증 소지자들의 영어 실력은 충분히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가 양성한 예비교사들은 활용하지 않으면서 인력 부족 운운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2009년도 임용 시험이 300일 정도 남은 오늘, 우리 예비교사들은 ‘임용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다시 새벽부터 도서관으로 향한다.

박영미/부산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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