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대한적십자사 혈액시장 98% 독과점제약회사에 팔 혈장 채혈 우선시하고
헌혈 자발적 열의 품도록 유도 못해
적십자사 자기개혁이 실마리이다 녹색병원 원장인 양길승 박사는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경험담을 토로하였다. “20년 전, 영국 옆 아일랜드라는 작은 나라에 유학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무료로 배달되는 지역신문을 보았다. 헌혈을 받는다는 광고가 자그마하게 실려 있었다. 헌혈을 받는 곳은 초등학교이고 시간도 저녁 7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산책 삼아 어슬렁거리며 찾아가 보았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나는 그날 꼬박 2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헌혈을 할 수 있었다. 길게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온 가족이 함께 나온 것 같았다. 헌혈을 받는 사람들 역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어서 자기 일이 끝난 뒤에야 헌혈을 받는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중략) 헌혈차 주변에서, 혹시 어깨띠를 두른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피해 가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당혹감을 느꼈다. 군대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헌혈을 받으면서도 항상 피가 모자라는 우리와 헌혈로 모은 피를 다른 나라에 지원해 주는 나라. 근무시간에 헌혈을 권유하는 나라와 퇴근 후에 가족이 모여 줄서서 기다리며 헌혈하는 나라. 물질적 풍요만 본다면 우리가 앞섰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식 수준에서는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가?” 겨울이면 으레 그렇듯 올해 역시 혈액부족 비상사태다. 병원에서 수술이 연기되는 등의 사태는 방학 등의 사유로 단체헌혈이 급감하는 겨울이면 늘 반복되는 일이다. 국민의 목숨과 직결되는 일임에도 이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고 있을까?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을 대한적십자사의 도덕적 해이와 영화표 등의 반대급부 제공을 통해 이뤄지는 헌혈자 모집 행태에 있다고 본다. 대한적십자사는 국가를 대신해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게 혈액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마땅히 구호·봉사활동을 목표로 하는 사회단체적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대한적십자사의 행태는 혈액이라는 완전 의약품 시장을 98%나 장악한 독과점 업체에 가깝다. 실제로 많은 헌혈의 집이 수혈용 전혈 대신 돈벌이용 성분헌혈을 강요하고 있다. 수혈용 전혈의 적정 재고량 확보보다, 제약회사에 팔 혈장 채혈을 더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모든 헌혈의 집이 ‘칼퇴근’을 엄수한다. 수혈용 혈액이 불과 이틀치도 채 남지 않은 비상상태라면 24시간 헌혈의 집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헌혈사업 전반을 맡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스스로 이런 해이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어찌 국민들이 헌혈에 대한 자발적 열의를 품을 수 있겠는가! 영화표 등의 반대급부 제공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쉽게 헌혈자를 늘리려는 안일한 발상의 산물이다. 국민에게서 순수한 기증의 기쁨을 빼앗고, ‘헌혈을 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따지게 만든 주범이 바로 대한적십자사다. 영화표를 두 장씩 주는 헌혈의 집 앞에는 헌혈자가 줄을 서고, 빵과 우유만을 제공하는 헌혈의 집 앞은 붙잡는 자원봉사자와 도망가는 사람들로 정신없는 우리의 현실은 발로 뛰며 진실함과 감동으로 승부하기를 거절하고 헌혈 장려품으로 손쉽게 승부하려 한 그릇된 시도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순수한 나눔의 기쁨만으로도 국민들은 팔을 걷어붙인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아무 대가 없이 선뜻 자신의 간이나 신장을 떼어 준 900여명의 생존시 기증인들이 있고, 그 어떤 보상이나 장려품이 없는데도 장기기증 등록에 동참한 30만명의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내가며 장기기증에 동참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대한적십자사가 처음부터 성실한 태도로 ‘사랑’에 호소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픈 사람을 돕자고, 나눔의 행복을 함께 누리자고 진심으로 호소했더라면 어땠을까? 분명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기쁘게 팔을 걷어붙이고 헌혈의 집에 누웠을 것이다. 그리고 헌혈 장려품 대신 보람과 긍지를 가슴에 안고 돌아갔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대한적십자사가 피나는 자기개혁을 시도할 때다.
박진탁/(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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